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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문의 학살자’ 리펑 전 중국 총리 별세

사진=AP연합뉴스


1989년 천안문(天安門) 민주화운동 당시 시위대에 대한 강경 진압을 지휘한 리펑(李鵬·사진) 전 중국 총리가 22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1세.

관영 신화통신은 23일 리 전 총리가 전날 노환으로 타계했다고 보도했다. 리 전 총리는 방광암으로 오랫동안 투병해 왔으며, 지난 몇 년간 사망설이 종종 나오기도 했다. ‘천안문의 학살자’라는 악명이 따라다녔지만 총리를 10년간 역임한 뒤 장쩌민 지도부 때 공산당 서열 2위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장까지 올랐다.

1928년 10월 쓰촨성 청두에서 태어난 리 전 총리는 양친 모두 중국 혁명 영웅이다. 세 살 때 부모가 국민당에 체포돼 처형당한 후 아버지 리숴신의 동료인 저우언라이와 인연을 맺었다. 저우 전 총리의 양자라는 소문이 많았지만 그는 2014년 회고록을 통해 “삼촌이라고 불렀지만 양자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리 전 총리는 17세에 공산당에 가입해 러시아에서 유학했고, 귀국 후 전력 관련 관리로 일하며 전형적인 기술 관료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이후 중국 전력공업부 부장을 역임하고, 자오쯔양 총리가 이끄는 국무원에서 부총리를 맡았다. 그리고 87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과 총리를 맡으며 중국 최고 지도부로 올라섰다.

그는 천안문 민주화운동 당시 강경 진압을 주장하며 학생들과 대화를 모색하던 당시 공산당 총서기 자오쯔양를 실각시켰다. 그리고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에게 군대를 동원해 시위대를 진압하자고 설득, 수많은 희생자를 낳게 만들었다.

리 전 총리는 98년 총리 자리를 후임인 주룽지 전 총리에게 물려주고, 전인대 상무위원장을 역임하다 2003년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그가 오랫동안 ‘2인자’로 남은 것은 천안문 사태를 강경 진압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2010년 천안문 사태와 관련한 회고록 ‘6·4일기’를 출간하려 했지만 무산됐다.

그는 한국과의 수교에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91년 북한을 방문해 “중국은 앞으로 두 개의 코리아 정책을 펴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등 한국과의 수교에 적극적이었다. 그는 94년과 2001년 각각 총리와 전인대 상무위원장 자격으로 두 차례 한국을 찾았다. 아들 리샤오펑은 교통운수부장(장관)을 지냈고, 중국전력국제유한공사 회장으로 활약했던 딸 리샤오린은 2010년 중국 최고 여성경제인에 선정된 바 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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