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서 박사 한 알의 밀알 되어] 신앙서적 녹음해 전국에 무상 보급

이재서 세계밀알연합 총재가 1981년 8월 지리산 지압골에서 열린 한국밀알선교단 제2차 하계수련회를 진행하고 있다.
 
1980년 3월 창간한 밀알보의 현재 모습인 ‘밀알&세계’ 소식지.
 
이재서 박사


지금은 컴퓨터를 이용해 시각장애인도 독서를 할 수 있게 됐지만, 과거엔 시각장애인이 책을 읽는다는 건 정말 어려웠다. 누군가가 직접 책을 읽어주거나, 녹음을 해 주거나, 점자(點字)로 옮겨줘야 가능했다. 몇 군데 점자도서관이 있기는 했지만 소장된 점자 서적이 몇 종류 되지 않았다. 당시 전국에 시각장애인 목회자가 20여명이나 있었는데 그들이 목회에 참고할 신앙 혹은 신학 서적이 거의 없어 고민이었다. 그래서 시작한 게 신앙 서적을 녹음해 보급하는 사업이었다. 시각장애인 목회자들에게 목회 자료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일반 시각장애인 성도들도 신앙의 유익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2월부터 준비해 3월에 몇 종류의 책을 녹음했다. 그 결과물을 대량 복사해 전국에 무상보급 하기 시작했다. 녹음을 처음 담당한 사람은 당시 이화여대 4학년 학생이었던 대흥제일교회 차경애(전 한국외대 영문과 교수) 자매였다. 제작된 책은 한경직 목사님의 방송 설교집 ‘기독교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이 걸어야 할 길’ ‘기도’ ‘기도의 능력’ 등이었다.

우리는 녹음도서들을 직접 시각장애인 교회를 방문해 나눠주기도 하고 서신이나 전화로 요청받아 우편으로 무상 보급했다. 그 후 더 다양한 책들을 녹음해 보급했고 나중에는 개인적인 주문을 받아 개인이 필요로 하는 책들을 녹음해 주는 일까지 하게 됐다.

밀알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월간 밀알보’는 그 창간호가 1980년 3월 1일 자로 나왔다. 밀알이 창립되고 4개월여 만에 월간 소식지가 나온 것이다. 처음에 이름을 정할 때는 ‘밀알지’를 생각했으나 보고서 성격을 강조하는 뜻에서 ‘밀알보’로 정했다.

밀알보 독자는 세 부류를 고려했다. 첫째는 밀알의 단원들, 둘째는 장애인들, 셋째는 교회를 포함한 일반인이었다. 밀알 단원들에게는 매달 활동 상황을 보고하고 기도제목을 나누면서 어디에 있든 같은 마음으로 밀알을 위해 기도하며 주어진 목표와 정신을 공유하고자 했다. 장애인들에게는 장애인과 관련된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하고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게 하고 재활 의지를 갖게 해 주고 싶었다.

나아가 교회와 일반인들에게는 장애인을 바로 이해하고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계몽하자는 것이 밀알보 발간이 갖는 또 하나의 취지였다. 발행인은 내가 됐고 첫 편집인은 정원규 간사가 맡았다. 특히 1982년 1월부터 밀알보에 밀알의 모든 수입 지출 상황을 보고함으로써 밀알선교단은 오늘날까지도 재정적으로 투명하다는 신뢰를 얻고 있다.

출범한 지 1년도 채 안 됐지만, 장애인에 대해 외치는 밀알의 목소리는 자못 강렬했다. 오히려 생겨난 지 얼마 안 되고 단원들의 수도 적었기 때문에 단결도 잘 되고 일에 대한 자부심도 강했던 것 같다. 밀알보 발간은 계몽의 한 방편이었지만 그 외에 크게 세 가지 형식으로 밀알의 장애인 계몽 사업은 형태를 갖춰 갔다.

첫째로 단원들이 일터와 학교 혹은 가정 등 만나는 사람들에게 장애인에 대해 알리는 일이었다. 화요모임에서는 항상 ‘우리는 장애인의 대변자가 돼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켰고 일상생활에서 이를 실천하자고 강조했다. 그때만 해도 워낙 장애인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주변 관심을 끌기가 쉬웠다. 단원들도 남이 하지 않는 일에 봉사한다는 것에 자부심이 있었고 주변에서 칭찬을 받기도 했다. 이는 후원자와 단원을 늘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패기 있게 시도했던 또 하나의 계몽 활동은 전단지 배포였다. 밀알 사무실에 마치 전도지처럼 밀알과 장애인을 알리는 취지문이나 소개 전단을 준비해 뒀다. 화요모임이 끝나고 돌아갈 때 몇 부씩 갖고 가서 주변 사람들에게 배포하도록 했다. 사회를 계몽하자는 순수한 취지를 실천한다는 점에서 다들 자부심을 느끼고 그 일을 했다. 특별한 날을 정해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계몽 전단지를 나누어 주는 일도 진행했다. 장애인에 대해 알려진 게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오히려 그 일은 신선했고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980년 8월 15일 한국대학생선교회(CCC)가 주관하는 세계복음화대성회가 여의도광장에서 개최됐을 땐 온종일 20여명의 단원들이 장애인을 소개하는 계몽 전단 1만5000부를 나눠주면서 장애인에 대해 소리 높여 알렸다. 대성회가 세계선교를 강조하는 집회였기 때문에 한국의 장애인뿐 아니라 세계장애인 선교의 필요성과 긴급성을 강조할 수 있었다.

강의나 간증 집회는 계몽 활동의 세 번째 형식이었다. 말이 강의이지 사실 강의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의 이야기였지만, 장애인에 대해 말해 달라는 요청이 오면 나는 겁 없이 어디든 달려갔다.

맨 처음 갔던 곳이 ‘횃불회’라는 모임이었다. 밀알선교단이 생긴 뒤 단장으로서 처음으로 외부 강의를 갔던 곳이었으니 밀알로서는 역사적인 일이었다. 횃불회는 서울 한남동에서 열리는 여성들의 성경공부 모임이었다. 사실 밀알이 벌써 알려져서, 혹은 내가 유명해서 먼저 밀알을 알고 초청한 게 아니라 장애인을 소개하고 싶다고 우리가 먼저 제안을 해서 성사된 일이었다. 강의 전날 신동아그룹 회장 부인이자 그 모임 회장인 이형자 권사님에게 전화를 걸어 밀알 취지를 설명하고 한번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뜻밖에도 이 권사님은 친절하게 승낙해주었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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