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문 대통령은 야당福이 있다”



‘박근혜 석방설’ 나돌면서 친박으로 회귀하는 한국당
총선 승리 위한 선택이겠지만 민심 더 멀어지게 하는 자충수
황 대표, ‘대통령보다 한국당이 더 답답하다’는 지적 듣고 있나


어수선하고 뒤숭숭하다. 패권전쟁 중인 미·중, 최악으로 치닫는 한·일 관계, 구멍 뚫린 안보, 최저임금 후폭풍, 자율형사립고 파동 등 굵직한 사안들이 겹친 탓이다. 현안들마다 진영 논리에 얽매인 주장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 사이 나라 경제와 서민 살림살이는 쪼그라들고 있다.

이 와중에 정치권을 중심으로 스멀스멀 퍼지는 얘기가 하나 있다. ‘오는 11월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풀려날 것이다.’ 좀 생뚱맞지만 박근혜 석방 이야기는 간간히 나왔다. 정보력과 통찰력을 평가 받는 박지원 의원도 연내 석방을 전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을 계속 감옥에 가둬두는 걸 부담스러워 할 것이고, 박 전 대통령이 나와야 ‘박근혜당’이 만들어져 보수가 분열되면서 내년 총선 때 여당에 유리한 구도가 형성될 것이라는 점 등이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그래서일까. 자유한국당이 요즘 ‘친박당’으로 회귀하는 모양새다. 당 사무총장,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 자리를 친박계가 꿰찼다. 내정 철회라는 변칙으로 이뤄진 인사다.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김세연 여의도연구원장 사퇴 권유 파동도 있었다. 박근혜 탄핵 당시 탈당했다가 재입당한 ‘복당파’가 밀려나고, 친박계가 당 중심을 차지하는 형국이다. 당 지도부가 이런 결정을 내린 이면에는 보수 분열을 막아야 한다는 계산이 있을 것이다. ‘박근혜당’이 출범하면 내년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압승, 한국당 참패’라는 성적표를 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친박계를 끌어안고 있다는 얘기다. 탄핵 당했지만, ‘선거의 여왕’으로 불렸던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이 여전하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당의 선택은 틀렸다. 보수 통합이 지향해야 할 과제인 것은 맞다. 그러나 통합도 통합 나름이다. 보수라고 하면 주변에서 눈길을 주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할 정도로 우리 사회의 보수세력이 위기에 처한 데에는 박 전 대통령과 친박계의 책임이 크다.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이 준 충격은 지금도 수그러들지 않았다. 탄핵의 굴레에서 벗어나도 시원찮을 판에 한국당 스스로 여당에 ‘탄핵 프레임’을 총선 카드로 쓰라고 권하는 꼴이 될 것이고, 그 프레임에 갇혀 허우적거리다 선거가 끝날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없는 건 아니나,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순 없는 일이다. ‘도로친박당’에 실망한 이들이 신당을 꾸려 총선에 나올 소지도 있다. 한국당의 친박 색채 강화가 또 다른 보수의 분열을 가져올 수 있다는 뜻이다.

‘박근혜당’이 총선에 나설 수 있겠지만, 미리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TK(대구·경북)지역에서도 아직까지는 ‘박근혜당’에 별 호응이 없다고 한다. 보수세력에 치명타를 입힌 박 전 대통령이 총선 때 결과적으로 여당을 돕는 일을 할지도 의문이다.

과거를 털고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게 절실하다. 그러려면 썩은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견뎌내야 한다. 그래야 새 살이 돋아나는 법이다. 한국당이 통합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친박을 무조건 포용하면 새로운 인물을 영입할 길은 그만큼 좁아진다. 반면 여당은 선거를 앞두고 상대적으로 큰 폭의 인적 교체를 단행할 것이다. 유권자들이 어느 정당에 표를 주고 싶을지, 답은 자명하다. 한국당의 제1 과제는 보수 통합이 아니라 처절한 자성을 바탕으로 한 당내 혁신이다.

인적 교체를 포함한 혁신과 함께 비전 제시가 필요하다. 한국당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집권세력 실정의 반사이익을 챙기려 한다, 대안 없이 비난하며 국정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들이다. 시대를 관통하고, 국민들이 공감할 만한 철학과 가치는 없다. 이래선 총선에서 승산이 없고, 집권 가능성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5개월 전, 황교안 대표가 한국당 신임 대표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은 직후엔 다소 신선한 느낌을 줬다. 총리를 지내서인지 정치신인 답지 않은 절제력을 보여줬고, 명료한 대국민 메시지를 종종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황 대표는 실망스럽다. 친박에 둘러싸여 케케묵은 계파논쟁을 유발시키고, 망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당내 의원들 징계 문제조차 말끔하게 매듭짓지 못하고 있다. ‘한국당이 정말 달라지고 있구나’라는 평판은커녕 ‘그러면 그렇지, 제 버릇 남 주겠어?’라는 냉소를 받고 있다. ‘한국당에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답변이 65%에 달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는 자업자득이다.

문재인정부의 국정운영은 거칠다. 잘못하거나 실수하고도 사과하거나 책임지는 경우가 별로 없다. 이처럼 문재인정부가 합리적 비판에 귀 기울이지 않고 독주를 거듭하는 데에는 한국당 책임도 크다. 적지 않은 유권자들이 대안 정당을 찾고 싶어 하지만, 그들에게 한국당은 전혀 매력적이지 않다. “문 대통령은 야당복(福)이 있다” “문 대통령도 답답하지만, 문 대통령보다 한국당이 더 답답하다”는 지적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김진홍 편집인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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