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라이프] 제2의 짜파구리 마트를 점령하다

사진=게티이미지
 
농심은 짜파게티 출시 35주년을 맞아 내놓을 새 짜파게티 큰사발의 맛을 소비자가 즐겨 먹는 조리법 중에서 선택하기로 했다. 사진은 소비자투표에서 선택받은 ‘트러플맛 짜파게티 큰사발’의 모습. 농심 제공
 
삼양식품은 지난해 12월 불닭볶음면에 첨가되는 소스를 출시했다. 사진은 삼양 불닭볶음면 소스 3종인 불닭볶음면 소스, 까르보불닭 소스, 핵불닭 소스의 모습. 삼양식품 제공
 
롯데제과는 소비자에게 인기를 끄는 조리법을 제품 포장 뒷면에 새기는 ‘온팩’ 방식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사진은 제품 포장에 ‘앙빠’(앙버터와 빠다코코낫의 합성어) ‘마가롱’(마가렛트와 마카롱의 합성어) 등의 조리법이 새겨져 있는 모습. 롯데제과 제공


‘Modify’(수정하다)와 ‘Consumer’(소비자)의 합성어인 모디슈머(Modisumer)라는 생소한 용어가 소비자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12년이다. 당시 MBC 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에 농심 라면 제품인 ‘너구리’와 짜파게티를 섞어 만든 ‘짜파구리’가 소개됐다. 짜파구리는 단순한 조리법에 예상치 못한 맛으로 사랑받았다. 소비자들은 곧 제조업체가 제시한 조리법에서 벗어나 나만의 요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모디슈머의 개념에 매료됐다. 이후 7년여간 수많은 상품이 소비자들의 개성 있는 조리법과 결합해 진화했다. 이젠 업계도 소비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솜씨를 발휘할 기회를 제공하며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

짜파구리의 성공으로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뒀던 농심은 최근 짜파게티 출시 35주년을 맞아 새 ‘짜파게티 큰사발면’ 맛을 공모했다. 트러플맛과 와사비맛, 치즈맛이 최종 후보에 올랐다. 주목할 만한 것은 후보 선정 과정이다. 농심은 빅데이터 분석 회사 다음소프트에 의뢰해 소셜네트워크 매트릭스 기법으로 소셜미디어에 노출된 짜파게티 조리법들을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트러플맛과 와사비맛, 치즈맛의 노출 횟수가 가장 많았다. 최종 후보에 오른 세 가지 맛을 놓고 5만5000명이 투표했는데 트러플맛이 70%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신상품으로 출시됐다. 트러플맛은 가수 화사가 지난 2월 MBC 예능 프로그램 ‘나혼자 산다’에 출연해 소개한 적 있는 조리법이다. 소비자가 만든 조리법대로 신제품이 개발된 것이다.

식품업계는 과거에도 상품 소비자 의견을 치밀하게 모았다. 대학생 서포터스, 주부 모니터링단 등에게 평가받고 시제품이 만들어지면 소비자들에게 시식 평가를 하는 등 여러 검증 단계를 거쳐 상품을 내놨다. 그래도 일단 기획된 제품에 큰 변화를 주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모디슈머 열풍은 한 제품이 가진 가능성을 극대화해줬다. 농심 관계자는 “모디슈머 열풍 이후에는 한 번 출시한 제품에 대한 의견을 다시 모으는 과정도 곁들여졌는데 이를 위해 빅데이터 분석 기법까지 동원하게 됐다”며 “모디슈머 열풍 이후 식품업계 마케팅이 공급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한 단계 진화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도 소비자 조리법을 활용해 브랜드를 진화시키고 있다. 불닭볶음면은 특유의 매운맛으로 소비자들에게 사랑받았다. 국내외 소비자들이 불닭볶음면의 매운맛에 도전하는 영상을 올리면서 입소문을 탔다. 하지만 매운맛은 입맛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었다. 문제를 해결한 것은 소비자 조리비법이었다. 불닭볶음면에 편의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스트링 치즈를 섞는 조리법이 인기를 끌었다. 매운맛은 덜했지만 고소하고 색다른 맛이 장점이었다. 삼양식품은 소셜미디어에서 인기를 끈 이 조리법을 빌려 치즈불닭볶음면을 만들었다. 지난해 12월 출시돼 불닭볶음면 주력 상품이 된 ‘까르보불닭볶음면’에도 소비자 조리법을 차용했다. 불닭볶음면에 우유와 체더치즈를 섞는 소비자들에게서 착안해 매운맛의 액상스프와 모차렐라치즈분말, 크림맛분말을 넣었다.

삼양식품은 인터넷을 모니터링하고 자사 홈페이지 게시판에 접수된 고객 문의도 제품 개발에 반영했다. ‘밥이랑 먹으면 더 맛있다. 소스만 따로 판매해 달라’ ‘더 매운맛을 출시해 달라’ ‘청양고추·시중 불닭소스로는 맛이 안 난다’는 민원이 빗발쳤다. 모두 불닭볶음면을 활용해 다른 조리법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삼양식품은 아예 소비자들이 새 조리법을 개발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줬다. 2017년 한정 출시된 불닭소스는 5000박스만 판매될 예정이었지만 인기가 많아 2만6000박스가 팔렸다. 삼양식품은 결국 불닭소스를 정식 출시했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식품업계 트렌드가 맛은 물론 소비자의 재미를 보장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며 “소비자 자체 조리법으로 인기를 끈 불닭볶음면은 소비자에게 재미를 줄 수 있는 자산이 많았던 셈”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은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새 조리법을 더 활발하게 만들어내고 있다. 최근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서는 ‘앙빠’(앙버터+빠다코코낫)가 인기를 끌고 있다. 롯데제과의 스테디셀러 ‘빠다코코낫’에 버터와 팥앙금을 곁들여 인기 디저트 ‘앙버터’를 재현했다. 출시한 지 40년 된 제품으로 최신 인기 디저트를 만들어내는 재미에 인스타그램에만 관련 게시글이 수천 개 올라올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롯데제과도 발 빠르게 앙빠 조리법을 제품 뒷면에 새겼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은 최근 들어 소비를 재미로 추구하면서 창의적인 시도들을 더 하고 있다”며 “여기에 소셜미디어를 통해 더 좋은 상품을 공유하는 성향이 결합하면서 모디슈머 소비자들이 진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소비자 영향력이 점점 강화되다보니 생산이 중단됐던 상품이 재출시되기도 한다. 오리온은 최근 소비자 요청에 따라 ‘태양의 맛 썬’ ‘치킨팝’ 등을 재출시하기로 했다. 모두 한때 마니아층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지만 생산이 중단된 상품들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태양의맛 썬은 출시 4개월 만에 판매량 1000만개를 돌파했고 치킨팝은 출시 이후 7주 만에 판매량 300만개를 넘었다. KFC치킨은 지난달 닭껍질튀김을 출시했다. 인도네시아 일부 매장에서만 판매되던 것이지만 한 소비자의 적극적인 판매 요청을 KFC가 받아들여 결국 한국에도 출시돼 큰 인기를 끌었다.

모디슈머 상품들은 인기를 끄는 주기가 짧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새로운 맛에 열광하는 것은 순간이고 시간이 지나면 금방 질릴 수 있다는 것이다. 김지호 경북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기존에 스테디셀러 제품을 섞어 새 조리법을 만드는 것이지 새로운 조리법을 만들기 위해 과거 들어본 적 없던 기발한 식재료를 쓰는 것은 아니다”며 “기존 제품을 섞어 새 제품을 만들려면 잘 알려지고 널리 확립된 기존 제품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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