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라이프] ‘어제의 감각’에서 ‘오늘의 공감’으로

타미진스 헤리티지 컬렉션. 현대백화점그룹 제공
 
트래디셔널 패션 브랜드들이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고유의 색은 잃지 않으면서도 젊은 감각을 덧입힌 게 주효했다는 평가다. 라코스테를 입은 테니스 선수 노박 조코비치와 해외에서 활동 중인 모델 겸 아티스트 김상우. 각사 제공
 
빈폴레이디스 모델컷(왼쪽), 빈폴맨 모델컷. 빈폴 제공


약 30년 전 유행했던 패션을 지금 다시 마주했을 때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부끄러움은 보는 사람 몫이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올 수도 있겠으나, 의외로 괜찮은 경우가 많다. 모두가 알고 있듯 유행은 돌고 돈다. 어제의 밋밋함이 오늘은 신선하게 다가올 수 있고, 오늘의 ‘패션’이 내일은 촌스러운 게 될 수 있다. 그런 흐름을 타고 ‘트래디셔널 캐주얼’이 트렌드로 돌아왔다.

트래디셔널 캐주얼은 ‘업계 용어’다보니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낯설 수 있다. 그렇다면 익숙하게 들어왔던 브랜드인 빈폴, 헤지스, 폴로, 타미힐피거, 라코스테를 떠올리면 된다. 튀지 않고 단정한 디자인, 출근할 때 입기에 괜찮은 단정한 옷, 면바지, 깃 있는 PK셔츠, 그리고 가슴에 박힌 로고 하나로 모든 게 설명되는 그 브랜드들을 트래디셔널 캐주얼이라고 부른다.

잔잔하게 꾸준히 사랑받아온 브랜드들이긴 했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며 제자리걸음이었다. 패션업계도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명품과 SPA(제조·유통 일괄형) 브랜드로 쏠림 현상이 점점 극명해진 게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시장에서 입지가 점차 좁아지면서 ‘강렬함’이 없는 트래디셔널 캐주얼은 패션업계에서 점점 밀리는 모양새였다. 화려한 컬러와 가성비로 승부하는 SPA 브랜드가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을 선도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컨템포러리 브랜드와 신진 디자이너들이 만들어낸 스트리트 패션 사이에서 갈 길을 찾지 못했던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다소 고루한 듯한 그 브랜드들에 ‘젊음’을 입히면서 판도가 바뀌고 있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주춤했던 트래디셔널 캐주얼에 대한 반응이 최근 1~2년 새 눈에 띄게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한섬의 타미힐피거는 지난해 2200억원 매출을 올리며 처음으로 매출 2000억원을 넘어섰다. 타미힐피거는 성장세가 계속되면서 지난 1~5월 신규 구매 고객이 전년 동기 대비 43% 늘었다. 올해 매출 목표는 2500억원이다. 프랑스의 트래디셔널 캐주얼 라코스테는 지난해 한국 론칭 이후 최고 매출액을 기록했다.

LF의 대표 브랜드인 헤지스는 지난해 11월 서울 중구 명동에 ‘스페이스H’를 오픈하고 헤지스의 브랜드 파워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패션 상품을 파는 매장의 개념이 아니라 브랜드의 콘셉트를 체험하는 공간으로 꾸몄다. 세련됨을 더하면서 젊은 소비자들에게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게 됐다. 삼성물산의 대표 브랜드 빈폴도 올해로 30주년을 맞아 가수 윤종신 장범준 등과 다양한 협업(컬래버레이션)을 시도하면서 젊은 소비자들을 적극 공략하고 있다.

트래디셔널 캐주얼의 화려한 귀환은 ‘새로운 시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게 지배적인 평가다. 타미힐피거의 경우 현대백화점그룹이 2017년 SK네트웍스 패션부문을 인수한 뒤 ‘브랜드 리빌딩’ 전략에 따라 색다른 시도를 계속 하고 있다. ‘타미힐피거 풋웨어’(신발), 아시아 최초로 들여온 영캐주얼 중심의 ‘타미진스’, 숍인숍 형태로 등장한 ‘타미힐피거 삭스’(양말) 등 구성을 다양화했다.

패션업계 한 종사자는 “패션을 즐기는 사람들은 양말, 벨트 같은 디테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타미힐피거 삭스 같은 라인업 확대가 다양한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는 데 유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클래식한 디자인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특하고 재밌는 컬래버로 20~30대를 끌어들인 것도 효과를 봤다. 코카콜라, 메르세데스 벤츠 등 이종업계 브랜드와의 컬래버나 ‘빅 로고’ 도입 등은 젊은 소비자들에게 매력으로 다가갔다. 한섬에 따르면 올해 타미힐피거 구매 고객 중 20~30대 비중이 50%에 이를 정도로 ‘젊은 브랜드’로 거듭나게 됐다.

빈폴도 20~30대 소비자를 공략하면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PK셔츠, 옥스퍼드 셔츠, 트렌치 코트, 더플 코트 등 클래식한 디자인을 꾸준히 출시하면서 빈폴의 색깔을 유지하고 있지만 ‘젊은 빈폴’ 또한 계속해서 추진하고 있다. 특히 20~30대를 타깃으로 한 온라인 전용 라인 ‘그린 빈폴’은 소비자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삼성물산에 따르면 빈폴레이디스의 온라인 매출 비중이 30% 가까이 증가했다.

젊은 고객을 늘리기 위해 외국의 핫한 디자이너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하는 전략도 나왔다. LF는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팀 코펜스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했다. 팀 코펜스는 헤지스의 모든 라인 콘셉트를 새로 정의하고 브랜드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헤지스 또한 패션 업계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컬래버를 시도하고 있다. 신진작가, 일러스트 작가, 판화 작가 등과의 협업으로 젊은 소비자들에게 브랜드 호감도를 높여나가고 있다.

트래디셔널 캐주얼의 대표 브랜드인 폴로도 젊은 시도를 계속해서 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는 폴로 셔츠에 특별한 의미를 지닌 문구와 캐릭터를 새기는 커스터마이징을 기획해 이틀 동안 2000장을 판매하는 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트래디셔널 캐주얼의 귀환은 이렇게 고유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젊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끌어들일만한 디테일을 강화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여기에 최근 2~3년 동안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레트로 열풍도 트래디셔널 캐주얼 브랜드의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박제욱 신세계백화점 남성의류팀장은 “트래디셔널 캐주얼은 3040 ‘아재’의 일상복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었다”면서 “하지만 인기 연예인, 유명 브랜드와 협업하면서 레트로 감성을 더하자 2030 젊은 고객들에게 주목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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