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안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가장 신뢰가 높아야 할 국방의 경계와 보고 체계 무너져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삼척항에 들어온 북한 주민들 남한의 안보 구멍에 혀 찼을 듯
해경의 최초 보고 시점부터 17일 거짓 브리핑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규명돼야


강원도 삼척에서 발생한 해상판 ‘노크 귀순’ 사건이 세간의 화제다. “당나라 군대도 아니고, 대한민국 국군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모르겠다”며 깊은 한숨을 짓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고 삼척항에 도착한 4명의 북한 주민들 역시 황당했을 것 같다. 그들이 해가 뜬 이후 삼척항에 접안한 이유는 야간에 움직이면 자칫 우리 군으로부터 사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렇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배를 움직였는데 항구에 도착할 때까지, 아니 항구에 도착해 30분간 서성이다 산책 나온 남측 주민과 만나기 전까지 군을 구경조차 못했다. ‘남한 군인들은 다 어디에 있는 거지?’라고 혀를 차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을 요약하면 이렇다. 북한 선박이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은 게 지난 12일 오후 9시쯤이고, 삼척항 부두에 접안한 때가 15일 오전 6시20분쯤이니 군은 57시간 넘도록 선박을 식별하지 못한 셈이다. 당시 해상에는 경비함이 있었고, P-3C 초계기가 정상 활동을 하고 있었으나 까맣게 몰랐다. 해안선 감시용 지능형 영상감시카메라에 북한 선박이 포착됐지만 남측 어선으로 오판했다.

창피해서 감추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군이 있는 그대로 국민들에게 알리고, 경계실패의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를 보였으면 파문이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버젓이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커져버렸다. 국방부가 17일 ‘삼척항 인근 바다에서 표류하던 북한 선박 한 척을 예인했다’면서 경계작전에 문제가 없었다고 브리핑한 것이다. 무모한 거짓말이라는 점이 드러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결국 국방장관이 20일 대국민 사과를 했고, 군 합동조사단이 동해 작전부대가 적절한 조처를 취했는지 규명하는 작업에 들어갔지만 군에 대한 신뢰는 이미 금이 가버렸다. 청와대는 국가안보실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으나 축소·은폐는 없었다고 강변하고 있으니 조사결과가 제대로 나올지 회의적이다.

아리송한 점들은 많다. 무엇보다 청와대 연루 의혹이다. 해양경찰청은 15일 오전 7시9분 청와대 국정상황실과 국가위기관리센터, 총리실, 국가정보원, 합참에 북한 선박이 자력으로 삼척항에 입항했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상황보고서를 보냈다. 청와대와 군, 모두 처음부터 정확한 팩트를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군의 첫 브리핑은 거짓과 왜곡으로 얼룩졌다. 게다가 청와대가 사전에 이를 알고 있었다는 정황도 나타났다. 첫 브리핑 장소에는 청와대 국가안보실 행정관이 있었다. 청와대가 축소·은폐를 지휘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근거들이다. 이를 해소하려면 15일 오전 7시9분부터 17일 첫 브리핑이 열리기까지 청와대와 군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대통령에게는 언제 어떻게 보고됐는지 등이 밝혀져야 한다. 아울러 북한 주민 2명을 서둘러 북한으로 돌려보낸 점, 영상감시카메라에 찍힌 북한 선박 접안 장면을 애당초 공개하지 않은 점 등도 의문이다.

야당은 ‘청와대 감독, 국방부 조연의 국방문란 참극’이라면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국방장관을 포함한 안보라인의 경질과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를 촉구했다. 국정조사도 요구했다. 일선 부대에 책임을 묻는 선에서 마무리되기는 힘들어졌다. 가장 신뢰가 높아야 할 국방의 경계와 보고 체계가 무너졌다. 정부의 진실성도 도마에 올랐다.

이번 사건과 유사점이 많은 2012년 10월의 ‘노크 귀순’ 사건 당시 야당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안보를 파탄 낸 새누리당에 미래를 맡길 수 없다. 나는 6·25전쟁 때 북한 체제가 싫어 피난 온 피난민의 아들이고 특전사 복무로 국방의 의무를 다했다. 안보를 가장 잘할 수 있는 후보가 바로 저다.” 하지만 문재인정부에서 군 기강과 안보태세가 나아진 게 별로 안 보인다. 북한 김정은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집권핵심세력, 북한을 주적이라고 표현하는데 주저하고 천안함 폭침사건 등 서해상에서의 북한 도발을 ‘불미스러운 충돌’이라고 언급한 국방장관, 육군참모총장을 카페로 불러낸 청와대 행정관. 이런 장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 아닐까 싶다.

“정치지도자들이 상대편 선의를 믿더라도 군사지도자들은 선의를 믿지 말고 스스로의 능력과 태세를 믿을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 평화를 만드는 건 정치의 몫이지만, 평화를 지키는 건 군대의 몫이다.” ‘공관병 갑질 의혹’으로 구속된 뒤 뇌물수수라는 별건으로 기소됐으나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박찬주 전 육군대장이 지난 4월 말, 전우들에게 보낸 ‘뒤늦은 전역사’의 일부다. 현역 장성들 입에선 이런 말이 왜 안 나오는지 안타깝다.

내일은 6·25 69주년이다. ‘피난민의 아들’ 문 대통령은 2017년과 2018년에 이어 올해도 6·25 추모식에 불참할까. 유감스럽지만, 그럴 것 같다.

김진홍 편집인 j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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