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기구’한 삶은 ‘험한 산길’ 가듯 사는 것



“그녀는 없는 집에 태어나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결혼한 뒤에는 남편이 일찍 세상을 등지는 바람에 참으로 ‘기구’한 일생을 살아야 했는데, 손발이 닳도록 정성으로 키운 자식들이 잘돼서 그것으로 위안을 삼고 살았다.” 청상(靑孀, 젊어서 남편을 잃고 혼자된 여인)의 몸으로 어린 자식들을 키워내며 고된 인생 역정을 지나왔을 한 어머니가 그려집니다.

“촉도(蜀道)가 ‘기구’하여 병마를 움직여서 유비를 도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삼국지’, 연변인민출판사 번역, 올재) 삼국지를 보면 유비가 웅거하던 익주, 지금의 쓰촨성 청두 쪽으로 향하는 길이 험해 쳐들어가기가 어렵다며 위나라 군이 조바심을 내는 부분이 나옵니다. 군사를 동원해 유비의 촉을 쳐야 하는데 가는 길이 험해 여의치 않다는 뜻입니다(‘기구’를 길이 험하다는 뜻으로 풀어 쓴 책도 있음). 그곳은 장강이라고도 하는 양쯔강의 발원지로 지세가 매우 험하다지요. 잔도(棧道, 벼랑 같은 곳에 낸 길)같이 험한 길로 갈 수밖에 없을 만큼 접근이 힘든 곳이었다고 합니다.

‘기구한 운명’처럼 쓰이는 기구(崎嶇)는 원래 ‘험한 산길’이라는 뜻입니다. 두 글자에 山(산)이 들어 있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겠는데, 험준한 산길이라는 원래 의미는 희미해지고 ‘인생이 기구하다’ 등처럼 굴곡진 삶을 비유하는 말로 굳어져 쓰입니다. 살아가는 데 곤경이 많은 것을 이르는 것이지요. 험한 지경 많이 견디며 산다는 말이겠습니다.

지나온 날들 돌아보면 기구하지 않은 인생 있을까요. 힘에 좀 부치더라도 험한 산길 같은 삶 뚜벅뚜벅 가다 보면 좋은 날도 있을 것입니다.

어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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