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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전석운] 끊이지 않는 라돈공포



라돈매트가 또 무더기로 적발됐다. 지난해 ‘라돈침대’ 사건 이후 1년이 지났는데도 라돈 공포가 가시지 않고 있다. 원자력안전위원회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5일 알앤엘, 솔고바이오메디칼, 지구촌의료기에서 판매한 제품들에서 기준치 이상의 라돈이 검출됐다며 판매중지와 수거명령을 내렸다. 매트나 온열기 혹은 의료기기로 분류된 개인용조합자극기 제품들이다. 리콜이 결정된 알앤엘 제품은 1975개다. 지구촌의료기기 제품은 1219개다. 솔고바이오메디칼의 회수대상 개인용조합자극기는 304개다. 특히 이 회사가 소비자들에게 건넨 이불, 매트 등 사은품 1만2000개에서 기준치 이상의 라돈이 나왔다. 이번에 적발된 제품들의 제조연도는 2013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부 소비자들은 6년 이상 라돈 매트에 누워 라돈 이불을 덮고 있었던 셈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라돈을 1급 발암물질로 분류하고 있다. 폐암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흡연 다음으로 라돈이 꼽힌다. 미국 환경청(EPA)은 해마다 미국인 폐암 사망자의 10% 이상인 2만1000명 정도가 라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연간 2000여명이 라돈에 희생되고 있다는 연구 보고서가 있다. 이는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자의 4배에 달하는 수치다. 라돈에 가장 많이 노출되는 사람들은 우라늄광산 노동자들이다.

그러나 특정 노동자들의 직업병 유발 요인 정도로 치부되던 라돈이 국민들의 일상적인 공간에 광범위하게 침투하고 있다는 사실이 지난해 라돈침대 사건으로 드러났다. 제조사인 대진침대는 음이온을 방출시키기 위해 모나자이트라는 암석 가루를 침대에 발랐는데, 이 모나자이트가 라돈을 내뿜은 것이다. 방사선물질인 모나자이트는 음이온 방출 효과가 있다는 이유로 여성 보정속옷에까지 쓰일 정도로 무분별하게 남용되고 있었다. 뒤늦게 정부는 다음 달 16일부터 생활밀착형 제품에 모나자이트 사용을 전면 금지한다고 한다. 모나자이트의 위험성이 드러난 지 1년이 더 지나서야 제재에 나선 것이다. 전형적인 뒷북행정이 아닐 수 없다. 모나자이트의 위험성을 몰랐다면 무능한 것이고, 사전에 알았다면 무책임한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안전 행정이 이렇게 허술해도 되는가.

정부의 라돈 대응에서 또 다른 문제는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침대와 매트 같은 제품은 라돈 검출이 확인되는 대로 판매중단이나 회수명령을 내리면서도 아파트나 주택은 기준치 이상의 라돈이 검출됐다는 제보가 잇따르는 데도 아무런 조사를 하지 않고 있다. 침대나 매트 제조사들은 당국의 명령에 따라 제품 리콜에 나섰지만, 라돈 아파트를 시공한 건설사는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고 있다. A건설이 송도 신도시에 건설한 아파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입주민들은 화강석에서 기준치 이상의 라돈이 나왔다며 보수공사를 요구하고 있지만 A건설은 법적책임이 없다며 버티고 있다. A건설이 다른 신도시에 지은 아파트에서는 콘크리트 벽에서도 기준치 이상의 라돈이 검출됐다는 의혹이 잇따르고 있다. 화장실에 시공하는 중국제 화강석뿐 아니라 콘크리트 벽에서도 라돈이 나오는 게 사실이라면 라돈침대나 라돈매트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다. 라돈 아파트도 당연히 리콜 대상이 돼야 한다. 주민들이 불안에 떠는데 정부가 실태조사조차 하지 않는 건 직무유기다.

라돈 공포는 아파트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지질학적으로 라돈이 나오는 토양이 전국적으로 산재한다. 밀폐된 지하공간뿐 아니라 오래된 단독주택이나 농가도 라돈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 무색, 무취한 라돈은 지하수에도 스며든다. 청주와 전북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올해부터 지하수 수질검사 때 라돈 측정을 추가하기로 했다. 서울지하철 역사 주변에 흐르는 지하수에서는 기준치를 훨씬 초과하는 라돈이 검출되고 있다. 라돈은 우리의 일상생활 곳곳에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정부는 다음 달 1일부터 공동주택 실내 공기에서 허용되는 라돈기준치를 종전 200Bq/㎥에서 148Bq/㎥로 강화한다. 바뀐 기준을 적용하면 경남 등 일부 지역에서는 기준치를 초과하는 라돈 주택이 2배로 늘어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새로운 라돈기준 수치만 제시할 것이 아니라 좀 더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라돈안전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전석운 미래전략국장 겸 논설위원 chunceda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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