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문화라] 남기고 싶은 것들



얼마 전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했다. 주로 수십 년 동안 스크랩해 놓은 신문 자료들과 생활 문서들, 일기장 등이었다. 한 아파트에서 30년 동안을 살아오셔서인지 그 양은 상당했다. 매일 각종 신문을 읽고 스크랩을 해오셨는데, 기사를 주제별로 담아놓은 종이봉투만 해도 수백 장이 넘었다. 봉투의 사이즈도 제각각이었는데 작게는 편지봉투에서 크게는 8절지 사이즈까지 다양했다.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기를 쓰셨던 아버지는 두꺼운 대학노트로 30권 넘는 일기장도 남기셨다. 일기장과 직접 쓰신 글 등을 우선적으로 챙겨두었다. 정리를 하면서 보니 남겨야 할 물건과 버려야 할 물건을 구분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유품을 정리하면서 나도 물건들과 자료들을 시간이 날 때마다 정리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내 유품을 정리하게 되는 날이 오면 지금의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겠지 싶어서이다. 자료의 형태보다는 완성품으로 남길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마음도 먹었다.

며칠 전 아버지가 즐겨 들으시던 음악을 우연히 차에서 듣게 되었다. 문득 앞으로 아이들은 나에 대해 무엇을 기억하게 될까 궁금해졌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운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어릴 적 아버지가 즐겨 듣던 음악이 지금도 기억난다. 너희들도 엄마가 즐겨 듣는 노래, 좋아하는 소리들, 좋아하는 음식처럼 사소한 것들을 많이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잠이 든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어른이 된 아이들은 어떤 엄마로 나를 기억할까 떠올려보았다.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던져보았다. 나는 어떤 엄마로 기억되기를 원하고 있는 걸까.

영국의 소설가 줄리안 반스는 ‘웃으면서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에서 기억에 대해 “우리는 살고, 우리는 죽고, 우리는 기억되고, 우리는 잊힌다. 즉시 잊히는 것이 아니라, 한 켜 한 켜씩 잊힌다. 우리가 기억하는 우리의 부모는 대개 그들의 성인기를 통해서다”라고 말한다. 기억은 언젠가는 사라지게 된다. 소중한 것들은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남기고 싶은 것들이 있다면 오랫동안 남을 수 있는 형태로 남겨두고 싶다.

문화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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