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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달러 지폐 인물 흑인여성으로 바꾼다더니… 미 “8년 연기” 왜




건국 이래 미국 지폐의 앞면 인물은 모두 백인 남성이었다. 인권운동가 해리엇 터브먼(왼쪽 사진)은 흑인 여성 최초로 2020년부터 발행되는 20달러 지폐(오른쪽)에 새겨질 예정이었다. 20달러는 미국 내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지폐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이 결정을 뒤집어 2028년까지 기존 지폐인물을 그대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20달러 앞면에는 7대 대통령인 앤드루 잭슨이 그려져 있다. 미국 내 소수인종과 여성들은 지폐인물 교체 결정이 아예 백지화될지도 모른다며 우려하고 있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22일 하원 금융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20달러 지폐 앞면의 인물 교체 계획을 2028년으로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므누신 장관은 “위조 문제 때문에 (새로운) 20달러 지폐는 2028년까지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새 지폐인물이 누가 될지도 2026년까지 공표하지 않을 예정이다.

이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가 지폐인물 교체 계획을 완전히 백지화하려 한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뉴욕타임스는 재무부 관리들을 인용해 “므누신 장관은 지폐인물 교체 계획을 전면 취소하면 소란이 일 것을 우려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퇴임할 때까지 계획을 미루고 싶어했다”고 전했다.

민주당 소속 진 섀힌 상원의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지폐인물 교체에 미온적이라고 지적하며 “슬프게도 20달러 지폐에서 터브먼을 만나기를 기다려온 여성과 소녀, 소수인종들에게는 틀림없는 메시지를 준다”고 말했다.

2016년 터브먼은 여성계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20달러 지폐인물로 선정됐다. 미국 여성들은 2015년 비영리단체 ‘우먼 온 투웬티(Women on 20)’를 조직했다. 백인 남성뿐인 미국 지폐 도안을 바꾸자는 취지였다. 우먼 온 투엔티는 자체 선정한 후보 15명 중 시민 투표를 거쳐 터브먼을 새 지폐인물로 선정했다.

메릴랜드주 농장 노예였던 터브먼은 1849년 농장을 탈출한 뒤 필라델피아에서 가정부로 일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모은 돈으로 남부 지역에서 여전히 노예생활을 하는 흑인들을 탈출시켰다. 노예주들은 터브먼에게 100만 달러에 달하는 현상금도 걸었다.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300명 이상을 탈출시켰다. 말년에는 여성 참정권 운동에도 힘썼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우먼 온 투웬티의 의견을 받아들여 여성 참정권 획득 100주년인 2020년부터 터브먼을 새긴 20달러 지폐를 발행키로 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폐인물 교체 연기에 개입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2016년 대선 후보 시절 “지폐인물 교체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인종·성 차별을 하지 않는 것)에 따른 결정”이라면서 터브먼은 2달러 지폐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2달러 지폐는 2003년 이후 발행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 20달러 인물인 잭슨 전 대통령을 롤모델로 삼아왔다. 백악관 집무실에 잭슨 전 대통령 초상화를 걸어놓을 정도다. 잭슨은 동부 정치 엘리트들을 누르고 당선된 첫 서부 출신 대통령이다. 당선된 이후에는 호전적인 대외정책을 펼쳤다. 특히 엘리트 계층의 전유물이던 정치를 서민에게 개방한 공로로도 인정받는다. 트럼프 대통령도 2016년 대선에서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장지대) 서민들의 도움으로 공화당·민주당 정치 엘리트에 승리한 바 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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