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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전정희] ‘녹두꽃’ 고부의 풍경



“약자, 한없이 약하고 더없이 힘없는 진짜 약자. 세상을 바꾸는 건 항상 약자였다.” 방영 중인 SBS 드라마 ‘녹두꽃’에서 동학농민항쟁을 이끄는 전봉준 장군(최무성 분)의 대사다. 당시 전봉준 등 전근대 지도자들이 봉건적 유토피아의 환상을 넘어섰다면 시민혁명도 가능했을 출발점이 고부 민란이다. 고부 민란은 조선 조정의 학정과 탐학으로 촉발돼 반일·반외세의 기치로 나아가 ‘동학농민혁명’으로까지 발전된다. 반면 농민군의 정치역량의 한계가 분명해 ‘항쟁’이라는 말도 맞다. 혁명 또는 항쟁은 실패했으나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백성이 굶어 죽지 않는 유토피아’를 실현하는 밑거름이 됐다. 고부는 전북 정읍시 고부면을 칭한다. 1914년 이전 읍성을 갖춘 군(郡)이었으나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일부가 부안 고창으로 편입됐고 읍치가 있던 곳이 고부면이 됐다. 고부 사람들은 1894년 민란을 일으킨 후 역모의 땅으로 낙인돼 너나없이 쉬쉬하고 살았다. 이 여파는 1980년대까지 계속됐다.

민란 발생 전까지 고부는 벼슬아치들의 갑지였다. 호남평야 산출이 넉넉하니 벼슬아치들이 조정에 선을 대어 부임하려 했다. 고부군수 조병갑은 권력자에게 7만냥의 뇌물을 주고 부임했다고 한다. 조병갑은 민란 전에도 수탈을 일삼았다. 이에 조정이 익산군수로 전보시키고 이은용 등 4명을 연이어 발령했으나 그들은 민씨 권력 눈에 날까 부임을 미뤘다. 조병갑도 유임 공작을 펼쳐 익산군수로 가지 않았다. 조병갑은 흉년임에도 고부 군민에 강제 세 징수를 서슴지 않았다. 아버지의 공적비를 세운다는 이유까지 들며 알뜰하게 수탈했다.

역사 도시 고부는 한적하다. 조병갑이 백성의 주리를 틀던 관아는 일제에 의해 황국신민 교육을 위한 소학교가 됐었다. 지금의 고부초교 터다. 읍내 유일하게 남은 옛 건축물이 군자정인데 조병갑이 기생 끼고 주지육림에 빠졌던 곳이다. 인구래야 3000여명. 읍내 거리가 500m 정도다. 1990년대 이후 민주화가 되면서 잠시 주민들의 생기가 돌았으나 고령화사회로 접어들면서 이내 식어버렸다. ‘녹두꽃’이 방영되기 전인 지난 4월 큰돈을 들인 ‘고부동학울림센터’가 준공했다. 주민들은 ‘녹두꽃’ 관광 특수를 기대한다. 하지만 울림센터는 정작 주말이면 문을 굳게 닫는다. 공무원이 근무하기 때문이다.

전정희 뉴콘텐츠부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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