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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거리의 만찬’, 이시대 아픈 목소리 보듬는 ‘웰메이드 교양’

KBS 1TV ‘거리의 만찬’ 홈페이지를 방문하면 이런 글귀를 만난다. “가벼운 시사 예능에 지친 당신에게 권하는 디저트.” 실제로 이 프로그램은 한없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은 방송을 선보이며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사진은 제주 4·3 사건을 다룬 내용이 전파를 탄 지난달 19일 방송 장면. KBS 제공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지난 1월 한 온라인 매체에 KBS 1TV 교양 프로그램 ‘거리의 만찬’을 다루면서 이렇게 적었다. “시청자들은 ‘수신료가 아깝지 않다’고 말한다. 지금 현재 우리 사회가 들여다봐야 할 문제들을 용감하게 소재로 선택하고, 할 말이 있는 분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양비론적인 접근이 아니라 어느 한쪽이라도 확실한 목소리를 담아낸다.”

실제로 거리의 만찬을 향한 평가는 호평이 대부분이다. 소재나 구성이 참신하다는 평가도 많다. 방송을 시작한 지 아직 1년도 안 됐지만, 수상 성적 역시 화려하다. 거리의 만찬 제작진은 지난해 9월 한국PD연합회가 선정하는 ‘이달의 PD상’을 수상했다. 방송은 11월엔 한국YWCA연합회가 뽑은 ‘좋은 프로그램상(성평등 부문)’을 받았고, 올해 3월에는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이 수여하는 ‘민언련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을 차지했다.

거리의 만찬이 처음 전파를 탄 건 지난해 7월이었다. 파일럿(시범) 프로그램으로 편성돼 2회에 걸쳐 방영된 뒤 11월 16일부터 정규 편성됐다. 파일럿 방송 당시 처음 다룬 주제는 KTX 해직 여승무원들. 이후에는 장애아동 부모의 애환이나 청소년 인권 문제, 간병인 가족의 슬픔 등을 차례로 다루며 한국사회 가장자리에 놓인 이들의 아픔을 드러내는 데 몰두했다.

제작진은 언론보도 피해자나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노동자의 유족 등 그동안 지상파 방송에서는 보기 힘들던 이들도 초대하곤 했다. 사법농단 사태나 제주 4·3 사건을 다룬 내용도 전파를 탔었다.

거리의 만찬은 이렇듯 시사성 짙은 프로그램이지만 시종일관 까라진 분위기로 진행되는 건 아니다. 방송인 박미선, 가수 양희은 등 여성 MC를 앞세운 게 주효했다. 이들은 따뜻한 시선으로 인터뷰이를 다독이면서 녹화가 이뤄지는 장소를 사랑방처럼 바꿔놓는다.

연출자인 이승문 PD는 9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거리의 만찬을 만들면서 ‘숨은 목소리’를 듣고 싶어한 시청자의 갈증이 있었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리의 만찬은 ‘팩트’를 놓고 따지는 방송이 아니다”며 “여성 MC로 진행진을 꾸리면서 팩트 안에 숨어 있던 감정이나 고민까지 끌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자평했다.

거리의 만찬은 매주 금요일 밤 10시에 방영된다. 방송사들은 이 시간대에 스타 PD가 연출을 맡거나 톱스타를 내세운 예능 기대작을 선보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거리의 만찬 시청률은 매주 3% 수준을 맴도는 상황이다. 주말을 앞둔 ‘불금’에 시청하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주제를 다룬다는 점도 이 프로그램이 지닌 한계로 꼽힌다.

이 PD는 “시청자들이 집에서 편하게 쉬고 싶어 하는 시간대여서 매회 어떤 주제를 할지 고민이 되긴 하지만, 가벼운 내용을 다룬다면 방송의 본질을 해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청자들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더 끌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며 “다양한 결을 지닌 주제들을 다루면서 어떻게든 살아남는 프로그램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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