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라이프] 4조원대 ‘검은 반도체’ 잡아라… 한·중·일 ‘김’ 삼국지

사진=각 사 제공, 게티이미지




짭조름하면서도 고소한 맛 때문에 한국인 밥상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밑반찬 김. 평소 반찬투정이 심한 아이들도 김에 밥을 싸서 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낸다. 연간 소비하는 김만 100억장에 달할 정도로 한국인은 김을 즐겨 먹는다.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의 풍경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김은 초밥과 주먹밥, 국 등을 만드는 데 널리 사용되며 이들 식탁에서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김의 위상 변화가 심상치 않다. ‘단백질과 섬유질이 풍부해 건강에 좋다’는 사실이 미국과 유럽 등에 알려지면서 관련 수요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국내 식품업계는 4조원대로 추정되는 세계 김 시장 규모가 향후 더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세계 김 생산의 99%를 담당하는 한국과 일본, 중국 간 격돌은 불가피해 보인다. 밥상에 빠지지 않는 반찬인 김은 ‘검은 반도체’로 불리며 수출 효자로 위상을 높이고 있다.

과거 김은 임금과 양반처럼 신분이 높거나 돈이 많은 사람들만의 전유물이었다. 지금처럼 원초(김의 원재료)를 양식하고 가공하는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대량생산이 불가능해 가격이 비쌌다. 한 끼 챙기는 일도 버거운 사람들이 값비싼 김을 밑반찬으로 올리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1970년대에 들어서야 서민들 식탁에도 김이 오르기 시작했다. 품종을 개량하고 자동으로 김을 건조하는 기계 등을 개발하면서 생산량이 크게 증가한 덕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28일 “김밥용 김과 김부각 등의 상품화가 시작된 것도 이 때”라고 설명했다.

1980년대는 한국 김 발전사에 있어 중요한 해다. 동원F&B와 대상㈜ 등 여러 업체들이 잇따라 조미김 제품을 출시했다. 더 이상 마른김에 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리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게 된 셈이다. 아울러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한국을 찾는 관광객이 늘면서 이들 사이에서도 짭짤하면서 고소한 맛을 자랑하는 김에 대한 입소문이 퍼져 날개돋친 듯 팔렸다. 1986년 200억원 규모이던 조미김 시장이 1988년 600억원으로 3배 이상 성장할 정도였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조미김은 여전히 일본인과 중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꼭 사야 하는 상품 중 하나”라고 귀띔했다. 롯데면세점이 최근 3년간 김 매출을 분석한 결과 일본인과 중국인이 전체 매출의 각각 40%, 30%를 차지했다.

김은 수출 효자 노릇도 톡톡히 하고 있다. 한국무역통계진흥원에 따르면 2014년 2억7439만 달러였던 김 수출액은 지난해 5억2556만 달러를 기록하며 5년 사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지난해 수산물 수출 상위 5개 품목에서도 참치에 이어 2위를 기록하며 1위 자리를 바짝 쫓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생산한 것만으로 따지면 사실상 1위는 김”이라고 설명했다.

업계는 과거 김 볼모지인 미국과 유럽 등에서의 관련 수요가 최근 큰 폭으로 늘면서 수출에 탄력이 붙었다고 분석했다. 2010년만 해도 동남아 일대 40여개국에 수출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김은 건강식’이라는 인식이 미국과 유럽 등으로 점차 확산되면서 판매가 늘었다는 것이다. 2017년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가 한국이 제안한 ‘김 제품 규격안’을 아시아 지역 표준 김 규격으로 정하면서 국산 김이 유명세를 탄 것도 한몫했다.

업계는 이 같은 호재에 힘입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CJ제일제당은 2010년부터 미국에 조미김을 수출하고 있으며 동원F&B도 2011년부터 ‘씨베지스’라는 이름의 조미김 제품을 미국과 캐나다 등에 판매하고 있다. 대상㈜ 역시 중국과 인도네시아에 이어 미국과 캐나다 등에 김을 수출하며 관련 시장 선점에 열을 올리고 있다.

김이 세계 여러 나라들로부터 사랑을 받기 시작하면서 이 시장을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김은 전 세계에서 한국과 일본, 중국에서만 생산되는 반면 100여개국 이상에서 소비돼 시장 선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에는 일본과 중국 등 외국계 업체들이 국내 김 시장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하며 시장 선점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 최대 수출국 한국에서 원료를 조달하는 것은 물론 가공·생산 노하우를 배워 세계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한국무역통계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이 수출한 김의 무게만 2만2099t에 달한다. 이미 국내에서 김을 생산·판매하는 업체만 270여개로 외국계 업체들의 구미를 당길 만한 환경이 조성돼 있는 상태다. ‘지도표 성경김’으로 알려진 성경식품은 2017년 사모펀드 스탠다드차타드프라이빗에쿼티(SC PE)에 인수됐다. 일본 김 시장 1위 업체 코아사(Koasa)그룹도 지난해 한국에 법인을 설립하고 향후 행보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제품 다각화와 등급제 도입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 활로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조미김 외 신제품 개발과 국산 김 고급화에 힘써야 한다는 의미다. CJ제일제당과 동원F&B는 각각 스낵 형태의 ‘비비고 칩’과 ‘양반 스낵김’을 출시하며 미국과 유럽 소비자 공략에 한창이다. 한국과 일본, 중국과 달리 미국과 유럽에서는 김을 스낵처럼 먹는다고 한다.

생산과 가공 단계에서 김 품질 등급을 매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일본과 중국은 생산과 가공 단계에서 김에 품질 등급을 매겨 높은 가격을 받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지적이다. “현재 국내 마른김 가격은 100장당 4500원 정도”라며 “일본과 비교했을 때 3분의 1 정도밖에 안 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대상㈜만 2017년 9월부터 ‘해조료 검사센터’를 구축하고 자체적으로 개발한 품질 등급제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해양수산부는 “일부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등급제를 운영하는 것을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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