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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연기했던 코미디언 젤렌스키, 진짜 우크라 대통령 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국민의 공복’ 후보가 우크라이나 대선 결선 투표가 실시된 21일(현지시간) 키예프의 선거운동본부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AP


TV드라마 ‘국민의 공복(Servant of the People)’에서 대통령을 연기했던 우크라이나의 코미디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41)가 현실 세계에서도 대통령에 오르게 됐다. 드라마 제목에서 이름을 딴 정당 ‘국민의 공복’의 대선 후보로 나선 그는 실제로 대통령의 꿈을 이뤘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러시아와의 분쟁 해결 등 대외 정책을 앞세우는 인물보다 당장 겪고 있는 빈곤과 부패를 척결할 의지를 가진 ‘정치 신인’을 선택했다.

우크라이나에서 21일(현지시간) 치러진 대선 결선 투표 결과 젤렌스키 후보가 득표율 73%를 얻어 24%를 얻은 페트로 포로셴코 현 대통령을 꺾고 압승할 것으로 보인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출구조사에서도 젤렌스키와 포로셴코는 각각 73%, 25%의 득표율을 얻을 것으로 예측됐다. 젤렌스키는 지난달 31일 치러진 1차 투표에서도 30%를 얻으며 16%를 받은 포로셴코를 큰 표차로 앞지른 바 있다. 공식 개표 결과는 다음 달 발표된다.

젤렌스키 후보는 일찌감치 대선 승리 선언을 했다. 그는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된 뒤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며 “옛 소련 국가들은 우리를 봐라.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포로셴코 대통령은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집무실은 떠나게 됐지만 정계에는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코미디언 출신인 젤렌스키는 2015년부터 방영된 정치드라마 ‘국민의 공복’에서 하루아침에 대통령이 된 30대 고등학교 역사 교사를 연기했다. 드라마에서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 정부의 부정부패를 맹렬하게 비판하다가 인터넷에서 국민적 인기를 얻어 엉겹결에 출마했고, 결국 대선에서 승리한다. 현실에서도 그는 인기가 급상승했고, 지난해 3월 드라마 제목과 똑같은 이름의 정당을 창당해 대선에 출마했다. 드라마와 현실이 똑같이 흘러간 셈이다. 이 드라마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판해 큰 인기를 끌었다.

젤렌스키 후보는 대선 기간 드라마 주제처럼 엘리트주의를 버리고 민심을 겨냥한 공약을 앞세웠다. 먼저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는 한 선거 유세에서 “모든 종류의 부패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할 계획이고, 부패 혐의로 구금된 사람은 보석으로 석방될 수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는 세제 개혁, 저금리 대출 제도, 지하경제 양성화 등 경제정책도 내세웠다. 유럽 최빈국으로 꼽히는 우크라이나는 2016년 기준 국민의 60%가 최저생계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한 우크라이나 시민은 “지금 받는 월급으로 살아갈 수 없다. 물가가 계속 오르고 있다”며 “젤렌스키는 새로운 우크라이나를 약속했다”고 워싱턴포스트에 말했다.

젤렌스키의 최대 약점은 정치 경험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크림반도를 둘러싼 우크라이나·러시아 분쟁,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5년간 이어지는 친(親)러시아 분리주의 반군과 정부군의 교전 등 대외정책을 수행할 때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젤렌스키는 돈바스 지역 분쟁을 끝내는 한편 푸틴 대통령과 담판 협상을 벌이겠다고 자신했으나 구체적인 방법론은 제시하지 못했다. 우크라이나 정치분석가 볼로디미르 페센코는 “경험이 부족한 젤렌스키에게 푸틴은 굉장히 위험한 적수”라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젤렌스키가 자신의 든든한 후원자인 우크라이나 유대계 재벌 이고르 콜로모이스키의 꼭두각시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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