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크게 될 놈’에서 지고지순한 모성을 연기한 배우 김해숙. 그는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촬영장에 있을 때와 맛있는 걸 먹을 때다. 단순하게 사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 모든 걸 다 가지려 하면 불행해진다”고 말했다. 준앤아이 제공
‘엄마’라는 단어에 퍼뜩 떠오르는 몇몇 배우의 얼굴들. 그중에는 아마 김해숙(64)이 빠지지 않을 테다.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작품에서 그는 늘 엄마였다. 때로는 인자하고 때로는 억척스럽게. 특유의 푸근함과 따뜻함만은 한결같았다.
18일 개봉한 영화 ‘크게 될 놈’에서도 익숙한 그 모습이다. 김해숙은 극 중 사형 선고를 받은 아들(손호준)을 살리기 위해 글을 배우는 까막눈 어머니 순옥을 연기했다. 비뚤배뚤한 글씨로 아들에게 보낼 편지를 정성스럽게 써 내려가는 모습에서 애끓는 모정이 배어난다.
김해숙이 이 작품에 끌린 이유 역시 그 지점이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마지막 편지 중 ‘바람이 되어서도 네 옆에 있겠다’는 문구가 마음에 와닿았다. 그게 엄마의 마음이 아닐까 싶더라. 작지만 아름다운 영화 한 편이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매 작품마다 엄마를 연기하면서도 그는 항상 새로운 표현을 고민한다. 김해숙은 “모정을 연기로 전달하는 건 가장 쉬우면서도 어렵다”며 “엄마라고 다 같은 엄마가 아니다. 캐릭터마다 차별점이 있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엄마가 있다는 걸 연기를 하며 알게 됐다”고 했다.
“엄마 역할은 특히 마음으로 다가가야 해요. 극 중 인물에 완전히 녹아들어야 하죠. 그래야 관객들도 그 감정을 똑같이 느낄 수 있거든요. 그래서 ‘크게 될 놈’처럼 극한 상황에 처한 엄마를 연기할 때는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어요. 아무래도 감정 소비가 크니까요.”
두 딸을 둔 김해숙은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단다. 그는 “엄마가 되고 보니 딸일 때는 몰랐던 것들이 보이더라. 다 큰 자식을 두고 ‘밥은 먹었느냐’는 식의 사소한 걱정을 하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었는데, 이제는 내가 그러고 있다”고 털어놨다.
“요즘 다들 바쁘고 힘들잖아요. 그러다 보면 가장 소중한 걸 잊고 살기 마련이에요. 특히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에게 소홀해지기 쉽죠. 이 영화를 보면서 그 순수한 사랑을 떠올리셨으면 좋겠어요. 내 곁에는 항상 든든한 내 편인 부모와 가족이 있다, 그러니 힘을 내자.”
방영 중인 드라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KBS2)에서도 세 딸을 둔 엄마로 시청자를 만나고 있다. 김해숙은 “작품이 끊이지 않고 계속 연기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미소를 지었다. “지금도 새로운 작품을 만날 때마다 흥분이 돼요. 그런 열정이 저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