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낟알 작은 조(좁쌀)로 지은 밥 같은 ‘조팝나무(꽃)’



이맘때가 되면 가지가지에 넉넉하게 밥을 담아내는 나무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 조밥(좁쌀밥)이 무지 열린 조팝나무이고, 또 하나는 먹고살 만하다는 뜻으로 쓰이던 ‘이밥에 고깃국’의 이밥(쌀밥)이 푸짐하게 달리는 이팝나무입니다. 이팝나무는 막 봉오리가 맺히고 있지요.

노르스름한 조는 오곡 가운데 하나로, 낟알이 들깨만 합니다. 하도 작아서 ‘좁쌀영감’처럼 작고 좀스러운 사람이나 물건을 비유하는 말에 쓰이지요. 조팝나무는 꽃 모습이 튀긴 좁쌀처럼 보인대서 이름 지어졌다는 이도 있습니다. 그런데 꽃을 가만히 보면 노릇한 빛이 돌기도 하고, 물러져서 흰 속살이 터진 조밥도 그런 색을 띠는 데서 붙은 이름으로 보는 것이 ‘조팝’의 말뜻에도 들어맞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봄비가 내려서 곡식 싹들에 윤기가 난다는 절기 곡우(穀雨)입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즈음이 되면 집마다 양식이 거의 동나 보리바심을 할 때까지 끼니를 잘 챙겨먹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보릿고개를 넘는 거지요. 하얀 목련이 그 자태 어디 두고 볼품없이 주걱만 한 꽃잎 뚝뚝 떨굴 때쯤 허기를 달래주던 조팝나무꽃입니다. 이 꽃 질 때쯤이면 이팝나무가 보아라, 먹어라, 하면서 얄밉게도 윤기 좔좔 나는 꽃을 피워대지요. 이 땅의 가난한 이들은 고봉쌀밥 같은 이런 꽃들을 쳐다만 보면서 고단한 하루하루를 보냈을 테고.

지금 문밖에는 쑥 섞인 백설기 같은, 큰누나 얼굴처럼 수수한 조팝나무꽃이 만발했습니다. 야들야들한 가지가 휘휘 뻗어서 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이 이쁩니다. 약용식물이기도 한 조팝나무는 400년 전 쓰인 ‘동의보감’(언해)에도 ‘조팝나모’로 나옵니다.

서완식 어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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