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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갈등 겪는 프랑스 국민들 “연대·통합” 한목소리

화재가 완전히 진압된 1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내부 모습. 붕괴된 지붕과 첨탑 잔해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정면에 황금십자가와 니콜라스 코스투의 ‘십자가에 내리신 그리스도’ 피에타상이 보인다. AP
 
역사유적 복원 전문가 자크 샤뉘가 첨탑 끝에 걸려 있던 청동 수탉 조각상을 안고 있는 모습. 첨탑이 무너지면서 잿더미 속으로 사라졌던 수탉 조각상은 샤뉘가 잔해를 뒤진 끝에 발견했다. AP


극심한 분열로 치닫던 프랑스 국민들이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화재를 계기로 다시금 연대와 통합을 강조하고 나섰다. 프랑스는 지난해 발생한 ‘노란 조끼’ 시위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내부 갈등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대성당 재건’이라는 공동의 목표 앞에서 국민 통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치적 위기에 몰렸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대성당 화재 덕에 전세 역전의 기회를 맞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마크롱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TV 대국민 연설에서 “우리는 국난 극복을 위해 행동하고 단합하는 능력이 있음을 이번에 재확인했다”며 “프랑스인으로서 우리가 열성적으로 추구해야 할 국가적, 인간적 과업을 되찾게 했다”고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화재 당일인 지난 15일 사회갈등 해소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일간 르피가로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자신의 모교이자 프랑스 정치 엘리트의 산실인 국립행정학교(ENA)를 폐교하고 세금을 감면하는 등 개혁안을 준비했지만 화재 수습을 이유로 연기했다.

AP통신에 따르면 파리 시민 수백명은 화재 이튿날 밤에도 노트르담 대성당 근처에 모여 철야기도를 했다. 이들은 손에 촛불을 들고 찬송가를 부르며 생쉴피스 성당에서 노트르담 대성당이 마주보이는 생미셸 광장까지 행진했다. 광장의 성모마리아 동상 근처에서 현악 연주회가 열렸다. 기도에 참여한 비안니 드 빌라레는 “파리 시민을 포함해 모든 프랑스인이 종교를 떠나 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성당 복원을 위해 시작한 기부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프랑스 양대 명품기업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HM)그룹과 케링 그룹, 화장품 업체 로레알, 정유사 토탈 등이 잇달아 거액을 쾌척하면서 단 하루 만에 8억 유로(약 1조270억원)가량 모였다.

진화 작업에 참여한 소방관과 경찰관, 성직자들도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이들은 대성당에 보관돼 있던 유물을 구해내기 위해 ‘인간 사슬’을 만들어 불길 속으로 들어갔다. 특히 주저없이 앞장서 성당 안에 들어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시면류관 등 귀중한 성물을 갖고 나온 파리소방청 사제 장마르크 푸르니에 신부는 영웅이 됐다.

대성당 내 유물들은 대부분 화마를 피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날 불에 타 무너진 첨탑 끝에 달려 있었던 청동 수탉 동상은 잔해 속에서 기적적으로 발견됐다. 대형 오르간, 황금 십자가, 예수상, 피에타상, 제단도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명물인 ‘장미 창’은 깨지지는 않았지만 검게 그을린 자국이 남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성당 책임 사제인 파트릭 쇼베 주교는 이날 “최대 6년 동안 성당을 관광객 등 외부에 공개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에두아르 필리프 총리는 특별 각료회의를 마친 뒤 화재로 무너진 첨탑 설계를 국제 공모에 부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필리프 총리는 “현대적 기술에 맞는 새로운 탑을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96m 높이의 첨탑은 1859년 성당 보수 공사를 맡았던 건축가 비올레 르 뒤크가 새로 추가한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노트르담 대성당 재건에 대해 “5년 이내에 작업이 마무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1992년 대형 화재로 쑥대밭이 됐던 영국 윈저성이 고작 5년 만에 재개장했던 것처럼 노트르담 대성당도 최대한 빨리 복원작업을 끝내겠다는 포부를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건축물 복원 전문가들은 마크롱 대통령의 전망이 비현실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은 자재 확보에만 최소 10~15년, 최대 40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소실된 첨탑과 지붕에 들어갈 참나무 등 자재 확보에만 수십년이 걸리고 추가 붕괴를 막기 위한 사전점검 결과와 전문가의 숙련도에 따라 작업 속도가 더뎌질 수도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첨탑과 지붕은 800년 이상 된 참나무를 사용해 만들어졌다. 대성당 천장을 떠받친 1만3000개의 기둥을 만드는 데 참나무 3000그루가 들어갔다.

노트르담 대성당이 지어진 12세기 기술을 재현할 전문가도 부족하다. 대성당이 지어질 당시엔 최고의 석공들이 노르망디에서 직접 최상급 석회암을 채석하고 일일이 성당 내부에 배열했다. 윈저성 복원을 관리·감독했던 프란시스 무드는 가디언 인터뷰에서 “노트르담 대성당 재건 속도는 재료의 확보보다 전문가 확보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노트르담 대성당 내부 구조물의 상태도 변수다. 전문가들은 화재 당시의 열기로 석조 구조물이 내구성이 약해지거나 훼손됐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1984년 영국 최대 성당인 요크 민스터가 화재에 휩싸였을 때는 유리를 지탱하는 땜납이 녹아 문제가 발생했다.

반면 기술이 발달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미국의 예술사학자 앤드루 탤런은 2011년부터 2년간 성당 안팎의 모습을 레이저 장비로 정밀하게 스캔해 기록해뒀다. 이때 확보한 3D 자료를 활용하면 대성당 복원에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경제지 포브스는 전했다.

조성은 이택현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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