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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세에도 그린다, 주님의 영광 위해" 최고령 김병기 화백

최고령 현역 화가 김병기가 103세 생일을 맞은 10일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 개인전 '여기, 지금(Here and Now)'에서 작품 '산 동쪽-서사시'를 소개하고 있다.


“전시를 해서 기쁩니다. 한편으론 제 마음이 약해져 있었어요. 출품작이 50점은 돼야 하는데 그림 몇 점 내놓고 전람회라고 하니….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를 도우신다고 했습니다. 성경에 ‘약할 때 강하리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말씀이 있지요.”

103세 생일이었던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평창30길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 ‘여기, 지금’전을 개막한 김병기 화백은 소감을 묻자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라며 이같이 답했다.

봄비가 내린 이날 가나아트센터에는 여느 때보다 많은 기자가 모였다. 김 화백이 3년 전 자신이 세운 현역 최고령 화가 개인전 기록을 또 깨는 역사적인 날이었기 때문이다.

전시에는 근작과 대표작을 합쳐 20여점이 나왔다. 2년 사이 그린 근작이 15점가량 된다. 전시작들은 일부 소품을 제외하고는 60~100호 대작들이 대부분이다.

90세도, 99세도 아닌 103세다. 서서 하는 미술 작업은 강도 높은 노동이다. 놀라울 정도의 작업량을 내놓은 것인데도 더 많은 작품을 내놓지 못한 게 아쉬웠던 모양이다. 물론 그도 이 일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안다. “100살 넘은 사람이 그림 그리는 것은 힘들어요. 이건 세계사적으로도 없는 일입니다.”

김 화백의 작품 세계는 추상과 구상, 형상과 비형상을 넘나든다. ‘산의 동쪽-서사시’를 보자. 화면을 분할하듯 가로 세로의 긴 선이 몇 개 있다. 그 사이로 멀리 산이 보인다. 화면 아래에는 최소의 조형언어라 할 수 있는 삼각형과 사각형이 있다. “그리다 보니 분할된 한국이 생각이 나요. 남북이 갈라지고, 도가 갈라지고, 그런 한국의 상태가 느껴져요.”

김 화백은 자신의 작업에 대해 “추상을 넘어 오브제를 넘어 원초적인 수공업적 상태에 도달한 선의 세계”라고 요약했다. 기성품 소변기를 뒤집어 놓고 ‘샘’이라고 이름 붙인 현대미술의 선구자 마르셀 뒤샹 이후 등장한 개념미술에 대한 반박이다.

그는 “현대미술 작가들이 아이디어만 내놓고 조수에게 틀을 짜라, 물감을 부어라 지시해서 작품을 완성한다”며 “나는 현대미술의 그런 허위성에 반발한다”고 했다. 직접 붓을 휘둘러 물감을 칠하는 수공업적 제작 방식을 자신이 왜 고수하는지를 설명한 것이다.

오랫동안 미국에서 활동하다 2015년 영구 귀국한 김 화백은 만 100세 되던 2016년에 ‘백세청풍전’을 열었다. 여세를 몰아 지난해에 또 개인전을 하려 했으나 폐렴에 걸려 중환자실 신세를 지면서 불발됐다.

이날 그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해 보였다. 지팡이에 의지하긴 했지만, 전시장을 돌며 작품을 일일이 설명했다. 누군가 작업시간을 묻자 “그런 질문을 제일 싫어한다. 나는 예술가지 노동자가 아니잖냐”며 눙치기도 했다.

김 화백은 광복 이전 한국교회의 중심지였던 ‘동방의 예루살렘’ 평양에서 나고 자랐다. 신앙심 깊은 모친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신앙을 가졌다. 부친은 1세대 일본 유학파 서양화가이자 컬렉터였던 김찬영이다.

삶의 고비마다 김 화백을 인도한 것은 신앙이었다. 장수하며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도 기도에 있다고 소개했다. “기도하면서 ‘부자 되게 해주세요, 건강 주세요’ 그렇게 말하지 않아요. 그런 기도는 수억 명이 하지 않겠어요. 하나님이 바빠요. 비슷한 건 다 못들어 주실 거예요. 그래서 기도문을 바꿔요. ‘비록 늙었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을 좀 더 하고 싶습니다’라고. 그 순간, 힘도 주시고 재능도 주시지요. 하나님을 위해 일할 때는 저도 몰래 힘이 나지요.” 전시는 5월 12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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