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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공감의 시대, 목회도 공감으로



강원도 산불 재난과 관련해 이례적으로 많은 미담이 쏟아졌다. 정부의 체계적 대처와 소방 관계자들의 땀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어서였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돋보였다. 구수한 남도 사투리의 추임새를 써가며 피해를 본 어르신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하는 모습에 진정성이 묻어났다. 타버린 볍씨까지 챙기며 시골 주민들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노력은 도시 사람에게도 신망과 안정감을 선사했다.

지난달 15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모스크에서 발생한 테러 사건 대처에서 드러난 저신다 아던 총리의 리더십도 놀라웠다. 39세의 젊은 총리였지만 그의 공감력은 국가적 혼란과 일부 과격 이슬람주의자들의 ‘반격’을 차단하기에 충분했다. 그는 히잡을 쓰고 테러 현장을 찾아 무슬림 희생자들에 대해 “그들이 우리”라고 말했고, 의회에서는 테러범의 이름을 절대 부르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선언했다.

미국 CNN방송 앵커는 이 의회 연설을 보도하면서 “파워풀 메시지”라고 격찬했다. 영국 가디언은 ‘사랑은 복사할 수 없다. 다른 리더들이 저신다 아던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그를 칭송했다.

공감(共感)은 글자 그대로 함께 느끼는 것이다. 사전에서는 남의 감정과 의견, 주장 따위에 대해 자기도 그렇다고 느끼는 것, 또는 그렇게 느끼는 기분으로 정의된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공감을 “피아노와 손의 관계처럼 마음이 마음을 건드리는 하나의 음악”이라고 정의했다. ‘아큐정전(阿Q正傳)’의 작가 루쉰(魯迅)도 “상대방의 마음속에 있는 현을 울려 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렇다면 공감은 누군가와 함께 음악을 만드는 행위가 아닐까.

최근 한국교회 목회 현장에도 이 같은 ‘연주’가 들리고 있다. 이른바 공감 목회다. 경기도 수원 한길교회 김형수 목사는 소그룹 중심의 가정교회를 섬긴다. 김 목사가 공감 목회를 시작한 것은 교인들의 수평 이동을 막기 위해 기존 신자의 등록을 받지 않으면서다. 교회엔 자연히 구도자들과 가나안 신자, 그리고 생전 처음 기독교에 입문한 사람들이 모였다. 김 목사는 이 신자들을 돌보면서 상담을 하게 됐고 심리적으로 허약한 성도들의 입장에 서게 됐다. 성도들의 삶에 더 깊이 들어가기 위해 그는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에서 상담학 석사(MA) 과정까지 공부했다.

김 목사는 “공감은 단순히 남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입장에 서서 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할 수밖에 없는지 이해하는 것”이라며 “나의 신발을 벗고 상대방의 신발을 신어보는 게 공감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목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다는 권위 때문에 무의식중에 권위주의자가 될 수 있다”며 “의식적으로라도 성도들의 ‘신발’을 신는 훈련을 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길교회는 소그룹별로 모여 성경 말씀을 묵상하며 자신의 삶을 공개한다. 성도들은 이 시간을 통해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공감한다. 김 목사 부부도 소그룹 모임에 동참한다.

김민정 좋은목회연구소 소장은 “현대 목회에서는 가르치려는 것보다 공감하는 자세가 더 필요하다”며 “목회자들의 공감 능력은 설교 준비에서 시작한다”고 밝혔다. 김 목사가 알려준 설교 준비 자세는 이랬다. ‘목회자가 주고 싶은 메시지가 아니라 성도들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준비하라’ ‘성도들이 공감할 수 있는 설교 언어를 익히라’ ‘성도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라’ 등이다.

시대는 변했다. 목회자는 더 이상 왕이나 사령관이 아니다. 성도들의 삶 속에 들어가야 성경의 메시지를 제대로 전할 수 있다. 아무리 좋은 메시지도 신자 마음의 건반과 현을 두드리고 켜지 못한다면 음악이 나올 수 없다. 다음세대는 노래하고 싶고 음악을 듣고 싶어한다.

성경에 공감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를 포괄하는 개념은 있다. 긍휼과 사랑이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상대를 긍휼히 여기며 사랑으로 감싸는 일이다. 신약성경 마태복음(25:35~36)에 등장하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이 공감의 사례가 될 수 있겠다.

“굶주릴 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 너희 집으로 맞아들였고 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 간호해 주었으며 갇혔을 때 찾아 주었다.”(현대인의성경)

신상목 종교부 차장 smsh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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