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의경] 순식간이네 순식간이야



벚꽃 피는 계절이 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자연의 향연이 바로 벚꽃축제 아닐까. 아르바이트와 빚에 시달리며 청춘을 보낸 내게도 벚꽃축제는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인생은 살 만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벚꽃이 만개한 거리를 함께 걸을 사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해 봄, 나는 역시나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고 있었다. 전화를 하는 곳마다 이미 정원이 찼다고 말해서 적잖이 실망한 상태였다. 이런 내 사정을 알기라도 한 듯 선배 언니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녀는 벚꽃축제 때 사진을 찍어 돈을 벌 거라면서 나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그냥 옆에서 팻말을 들고 서 있다가 고객에게 돈을 받으면 된다고 했다.

벚꽃축제가 시작되던 날, 나는 그녀가 정성껏 만든 ‘폴라로이드 사진 찍으세요’라고 적힌 팻말을 손에 들고는 “사진 찍으세요. 추억을 담아 가세요!”라고 외쳤다. 생각만큼 돈이 모이지 않았다. 경쟁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사진을 찍어온 전문 사진사는 물론이고 축제 기간에 용돈벌이로 나선 대학생 ‘찍사’도 많았다. 언니는 3년 전부터 벚꽃축제 때마다 이 일을 했는데 디지털카메라가 인기를 끌면서 벌이가 예전만 못하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즉석사진만큼 벚꽃과 어울리는 사진은 없다고 생각했다. 사진을 찍고 필름을 흔들면 필름 위로 형체가 잡히는 모습이 벚꽃이 번져가는 모습과 닮기도 했지만, 빨리 피고 지는 성질 급한 벚꽃은 즉석카메라로 재빨리 찍어 담아야 할 것 같았다. 나는 한 번 더 외쳤다. “추억을 담아 가세요!”

그때 백발의 노부부가 다가와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당신 눈 감았잖아. 표정이 굳어 있네.” 네 번이나 사진을 찍은 후에야 할머니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가 사진을 보며 중얼거렸다. “아이고, 순식간이네 순식간이야.” 금세 인화된 즉석사진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노부부의 모습이 벚꽃 사이로 멀어져 사라질 때쯤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순식간에 인생의 황혼에 다다랐다는 뜻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김의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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