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최주혜] 행주 냄새가 뭔지도 모르면서



며칠 전, 마감이 코앞이라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르고 책상 앞에 붙어 있던 때였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이 신발도 벗기 전에 ‘저녁이 뭐예요?’를 외쳤다. 즉시 쓰던 걸 멈추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학원 수업에 늦지 않게 보내려면 서둘러야 했기 때문이다. 머릿속은 여전히 주인공의 결투 장면으로 꽉 차 있었지만 두 손은 습관대로 밥상 차리기를 시작했다. 우선 밥솥을 열어 밥이 충분한지를 확인하고 냉동실의 고기를 꺼내 프라이팬에 구웠다. 기름이 사방으로 튀며 구워지는 동안 잡동사니로 어질러진 식탁을 치우고 행주로 닦았다. 마지막으로 고기와 반찬을 올려놓고 아들을 불렀다. 머리와 손의 불협화음에도 불구하고 용케 밥상을 차려내는 동안 아들은 소파에 붙은 껌이 되어 있었다. 교복과 배낭을 현관부터 거실까지 줄지어 팽개쳐 놓은 채 말이다. 그런 녀석이 식탁에 앉자마자 콧잔등을 찌푸리며 킁킁거렸다. 식탁에서 행주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밥상을 차려낸 나의 수고는 퀴퀴한 행주에 한 방 먹고 나가떨어졌다. 나는 서운함을 누르고 세제를 푼 대야에 행주를 담갔다.

어릴 때 손님이 집에 오면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집이 너무 깨끗하면 복이 붙지 않는다고. 그만큼 깔끔했던 엄마는 전업주부가 대부분이던 시절 흔치 않던 워킹맘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깔끔해도 일에 치이다 보면 소홀한 구석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걸 귀신같이 알아차린 건 나였다. 특히 행주에서 요상한 냄새라도 풍기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행주 삶을 때를 놓칠 만큼 엄마가 고단할 거라는 건 짐작도 못 한 채 말이다. 나는 고기를 우적우적 씹고 있는 아들을 흘겨보며 웅얼거렸다. “행주 냄새가 뭔지도 모르면서….”

철없던 나는 엄마처럼 워킹맘이 되었고 엄마처럼 고단하다. 늦게 배운 도둑질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늦은 나이에 등단해 글 쓴다는 핑계로 연락도 자주 못 하는 무심한 딸이 되었다. 길가의 벚나무마다 꽃망울이 부풀어 올랐다. 봄이 오면 벚꽃은 피겠지만 여든이 내일모레인 엄마는 몇 번의 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 당장 전화해 꽃구경이나 가자고 해야겠다.

최주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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