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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코너-노석철] 한국인들이 중국 떠나는 이유



중국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개발도상국이라고 한다. 리커창 총리는 지난달 5일 전인대 업무보고에서 “중국이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큰 개발도상국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중국이 개발도상국 지위에 집착하는 것은 국내적으로 각종 규제와 보조금으로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수출을 많이 해도 개발도상국이니 견제하지 말라는 명분용으로 보인다. 선진국이란 굴레가 씌워지면 중국 시장도 서구 수준으로 개방하라는 압력이 불가피하다. 중국은 그런 식으로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뤄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개발도상국으로 봐달라고 하니 참 염치가 없다.

중국은 외국 기업에 대한 규제와 차별을 하면서 갈등을 빚는 외국에는 각종 보복 조치로 제압하는 구태도 못 버리고 있다. 외국 기업들은 이미 덩치가 커진 중국 기업들과 경쟁도 버거운데, 각종 규제와 걸림돌은 여전해 속속 중국 시장을 떠나고 있다. 사실 현대자동차가 베이징 1공장 가동을 중단키로 하며 고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대차의 전략적 실패와 중국 업체들의 경쟁력 상승도 이유지만 결정타는 사드(THAAD) 보복이었다.

2002년 설립된 베이징현대는 한때 중국 내 판매량 110만대를 넘어서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중국 업체들이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급성장하고 독일이나 일본 업체들은 고급차 시장을 장악하면서 현대차의 입지가 좁아졌다. 현대차는 2010년대 초반 중국에서 8~9%의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다 2015년 7.9%, 2016년에는 7.4%로 낮아지긴 했지만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2016년에는 중국에서 역대 최고 판매량인 114만2016대를 기록했다. 그리고 2017년 판매 목표는 125만대로 잡고 있었다. 그런데 사드 사태가 터지면서 그해 판매량이 78만5000대로 급감했고, 시장점유율도 4.6%로 급락했다.

만약 사드 보복이 없었다면 현대차는 지금 고전을 하더라도 베이징 1공장이 문을 닫는 상황까지는 아니었을지 모른다. 사드 사태는 현대차가 중국 시장에서 위기감을 느낄 때 스스로 변신할 기회마저 빼앗아 버렸다.

베이징현대뿐 아니라 130여개 1차 협력업체와 수많은 2, 3차 협력업체들까지 한국 업체들은 요즘 벼랑 끝에 서 있다. 협력업체들은 현대차와 운명을 함께하거나 다른 공급처를 찾거나 곧 베이징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사실 중국 쪽에서 이제 사드 보복 얘기는 그만하자고 한다지만 한국 기업들이 입은 상처는 계속 덧나고 있다. 롯데는 지금도 공장 철수를 계속하고 있고, CJ도 외식사업을 구조조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중국은 여전히 케이팝(K-POP) 공연을 거의 허용하지 않는 등 사드 앙금을 풀지 않고 있다.

한국 기업인들은 사드 사태 이후 중국에 염증을 느끼고 의욕도 크게 상실했다는 하소연을 자주 한다. 대기업 주재원들은 “중국 기업들이 어느새 우리를 만만하게 보고, 눈길도 예전처럼 친근하지 않다”는 우스갯소리도 한다. 특히 한국인들의 ‘차이나 엑소더스’가 심상치 않다. 한때 10만명까지 이르던 베이징의 한인 수는 2016년 6만3000여명으로 줄었고, 현재 4만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일각에선 3만여명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외국 기업들의 ‘탈중국’도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떠난 톈진은 외국인직접투자(FDI)가 2016년 101억 달러에서 지난해 48억5000만 달러로 절반 이상 줄었다. 일본 기업 엡손은 2021년 3월부로 중국 선전에 있는 손목시계 제조 공장을 폐쇄하기로 했다. 선전에서는 지난해 삼성의 통신장비 공장 철수, 일본 올림푸스의 생산라인 철수 소식이 이어졌다. 다급해진 중국은 다시 외국 기업들에 손을 내밀고 있다. 올 초부터 중국 기관과 지방정부 관료들이 투자유치 설명회를 열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이 무역협회 등에 많이 들어온다고 한다. 중국 시장에 들어가면 볼모가 된다는 걱정이 앞서지만 한국 기업들은 여전히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기회의 땅으로 본다. 독배를 마시는 심정으로 다시 중국으로 가야 하는 우리 처지가 딱할 따름이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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