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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현대차 가동중단 예고에 中 교민사회 ‘패닉’… “미래 안 보여”

지난 29일 찾은 현대차의 베이징 1공장 전경. 차량과 직원들이 드나들고 차량 성능시험을 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조만간 문을 닫는다. 베이징 교민사회는 계속되는 사업환경 악화로 수년째 위축되고 있다. 학생은 물론 교민 수도 급속히 줄고 있다.


사드(THAAD) 갈등 여파로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베이징현대차도 일부 공장 가동을 중단키로 하면서 중국 베이징 교민사회가 잇따라 타격을 입고 있다. 현대차에 의지하는 수많은 협력업체의 씀씀이는 줄어들었지만 상가 임대료는 폭등하면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음식점도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베이징 교민 수는 호황기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치솟는 임대료와 임금, 각종 규제 등 사업 환경이 악화돼 ‘한인 엑소더스’는 계속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현대차는 베이징 1공장 가동을 중단키로 하고 2, 3공장 등으로 인력을 재배치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31일 “지난 설 전에 1~3공장 직원 2000여명을 감축해 베이징현대 직원 수는 지난해 말 1만4000명에서 현재 1만2000여명으로 줄었다”며 “다만 아직 1공장 가동중단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현대차 베이징 공장은 이미 올해 1월부터 가동을 거의 하지 못해 130여개 1차 협력업체와 2, 3차 협력업체들의 어려움이 현실화되고 있다. 1차 협력업체들은 미리 구조조정을 하고 현금을 준비해뒀지만 2, 3차 업체들은 자금난이 심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베이징현대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4개월 정도인 납품대금 지급 기간을 감안하면 4~5월에는 2, 3차 협력업체들이 심각한 자금난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대차는 중국 전체에서 월 4만대 정도를 생산하면서 가동률 40% 선을 유지하고 있다”며 “가동률을 더 낮춰야 수익성이 높아지는데, 베이징 정부가 가동률을 높여 달라고 독려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러나 차량 판매가 부진한 상황에서 과잉생산을 하면 결국 할인해서 팔아야 하고, 다시 협력업체들에 단가 후려치기를 해야 하는 악순환이 우려된다. 게다가 생산한 차량이 팔리지 않아 베이징 공장 야적장은 이미 포화상태라는 얘기도 들린다.

지난 29일 찾은 베이징 1공장은 여전히 차량과 인력이 드나들고, 차량 성능시험도 진행되는 등 겉으로는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1공장과 2공장 사이에 있는 식당가로 들어서니 곳곳에 문을 닫은 가게들이 눈에 띄었다. 폐업한 지 오래된 듯 가게 안이 텅 비어 있거나 물건은 있지만 커다란 자물쇠로 잠겨 있는 곳도 있었다.

현대차뿐 아니라 기아차도 옌청 1공장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CJ 역시 베이징 리두 지역의 빕스 매장 문을 닫기로 했다. 한국 기업들이 어려워지면서 베이징의 한국 음식점과 은행, 학원들까지 줄줄이 타격을 입고 있다. 최근 문을 닫은 대형 한국 음식점만 4~5곳에 이른다. 저녁 선술집으로 인기를 끌던 작은 가게들도 손님이 줄어 고전하고 있다. 치솟는 임대료도 큰 부담이다. 베이징 왕징의 한 음식점 사장은 “베이징 지역 사무실이나 가게 임대료는 10년 전보다 5배 이상 올랐다”며 “엊그제까지 장사 잘하던 가게가 갑자기 문닫는 걸 보면 남일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기업 환경도 크게 악화됐다. 중국의 임금 수준이 급속히 높아진데다 노동법이 강화돼 4대보험까지 다 들어줘야 하는데 해고는 어려워져 고용비용이 급상승했다. 직원이 일을 안 해도 계약 기간에는 내쫓을 수 없고 보수를 그대로 다 줘야 한다. 베이징 중소기업협회 관계자는 “놀기만 하는 직원을 잘랐는데 소송을 걸겠다고 해 애를 먹는 경우가 있다”면서 “요즘 노동계약서를 보내달라는 사장님들이 많다”고 전했다.

한인들이 속속 베트남 등 동남아로 떠나면서 교민도 급속히 줄고 있다. 베이징 거주 한인 수는 가장 많을 때 10만명에 달했으나 현재는 3만~4만명에 불과한 것으로 추산된다. 2016년 말 베이징 교민이 6만3000명 정도였던 점을 감안하면 불과 3년 사이에 30% 이상 감소했을 것이란 얘기다. 베이징 한국국제학교도 학생이 한때 1300명까지 됐는데 사드 사태 전에 1000명 선으로 감소했고, 지금은 800명대로 줄었다고 한다.

베이징한인회 박용희 회장은 “요즘 한인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미래가 안 보인다는 것”이라며 “그러나 한인들이 떠나는 것은 중국도 임금 상승과 물가 상승, 규제 강화 등으로 국가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방증이어서 중국 정부가 잘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베이징=글·사진 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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