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함께하는 설교] 악어와 욥



지극히 신학적인 다툼이 시의 형태로 기록되어 있는 욥기는 늘 어려운 말씀입니다. 오늘 같이 나누고 싶은 말씀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부분(38~41장)입니다. 내용을 보면 주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연을 어떻게 움직이고 계시는지, 그가 만드신 피조물에 어떤 지혜를 주셨는지에 관한 것들입니다.

이 중에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악어입니다. 하나님은 41장 전체를 통해 악어에 대해서만 말씀하십니다. 악어가 얼마나 강한 동물인지, 신통하고 묘한 피조물인지를 계속 말씀하시다가 진짜 하시고자 했던 말씀을 마지막 절에서 하십니다. “그것은 모든 높은 자를 내려다보며 모든 교만한 자들에게 군림하는 왕이니라.”(욥 41:34) 즉 ‘악어가 교만한 것의 왕’이라고 결론을 내리십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욥의 태도입니다. 욥은 악어에 대한 말씀을 듣고 나서 모든 게 가능하신 하나님을 42장 시작 부분에서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을 듣는 것이 아니라 본다고 말하면서 먼지와 재 가운데서 회개한다고 말합니다. 욥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의인이었음에도 어떤 죄를 뉘우친 것일까요?

창이나 작살로도 잡을 수 없는 악어는 사실 욥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이 욥의 심장에 ‘쿵’하고 떨어진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표현이 욥이 하나님을 본다는 고백입니다. 잠언 1장 2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하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말씀을 본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본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어서 이해하는 것에 더해서 눈으로 보듯 분명하게 안다는 뜻입니다.

악어에 대한 말씀을 통해 욥은 스스로 의롭게 생각하는 악어의 딱딱한 가죽처럼 교만해진 영혼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는 뉘우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철갑옷을 입은 악어처럼 자신을 정의롭다 하고 친구를 비롯한 이웃을 판단했던 죄, 즉 유일한 심판자이신 하나님 자리에 섰던 자신을 회개했습니다. 교만은 사실 세 친구의 죄보다 더 중한 죄입니다.

모든 고난이 끝나고 욥은 이전보다 더 많은 축복을 받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제일 먼저 받은 축복이 자식이나 재산이 아니라 바로 형제자매와 욥을 아는 모든 사람의 위로였습니다. 이전에는 한 사람도 그의 고난을 위로하지 않았습니다. 세 친구는 회개를 재촉했고, 심지어 그의 아내는 저주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회개 이후 그의 이웃들이 찾아와서 금까지 주면서 위로합니다. 더 이상 세상이 축복받은 그를 질투하지 않고 마음을 같이 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먼저 믿은 우리에게 악어와 같이 단단해진 우리 영혼을 보여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우리가 세상보다 의롭다 생각하지 않았는지요. 이웃이 다가갈 수 없는 높은 담 안에서 우리끼리만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으려고 한 것은 아닌지요. 예수님이 그토록 싫어하셨던 바리새인처럼 이웃들에게 참 기독교인이 아닌 종교인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요.

욥처럼 먼지와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할 때입니다. 내가 먼저, 그리고 교회가 이웃과 함께하지 못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가난하고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이웃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그들이 우리와 교회를 찾아와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는 복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최강일 목사(다문화미션 대표)

●이 설교는 장애인을 위해 사회적 기업 ‘샤프에스이’ 소속 지적 장애인 4명이 필자의 원고를 쉽게 고쳐 쓴 것입니다.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