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티 테이블] 버닝썬, 카이퍼에게 묻다


 
이지현 종교2부 선임기자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는 ‘버닝썬 게이트’를 바라보며 자녀들에게 올바른 삶의 태도를 가르쳐 주지 못한다면, 우리가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행복을 누리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면 즉각적이고 일시적인 쾌락을 좇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꼈다. 외신들도 이번 사건을 주의깊게 바라보고 있다. 영국의 로이터 통신은 최근 ‘섹스 스캔들에 흔들리는 K팝’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 연예계는 어린 스타들의 삶에 일일이 관여하며 조율하기로 악명 높다. 인기 있는 노래와 안무는 그들이 도덕 교육을 받을 시간을 희생해서 탄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버닝썬 게이트는 어린 나이에 엄청난 부와 인기를 쌓은 일부 연예인들의 불법적인 성적 일탈, 그들의 일탈을 부추기고 면죄부를 주는 방송사와 유력 기획사의 카르텔, 여성이 성 상품화된 타락한 사회의 사악한 단면을 보여준다.

미를 탐구하는 ‘자유’가 예술의 창조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다. 예술가들에게는 끊임없는 영감을 제공해주는 뮤즈들이 존재했다. 영감을 얻기 위해 기행을 일삼는 이들도 있고, 예술이란 이름으로 쾌락이 용인되는 풍조도 있었다. 잘못된 탐닉이 불확실한 자유를 향해 질주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낯선 이름 하나를 떠올려 본다. 19세기 네덜란드의 신학자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1837~1920).

카이퍼는 네덜란드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흥미롭게도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조차 그를 “10개의 머리와 100개의 손을 가진 사람”이라고 칭송했다. 목회자, 신학자, 교회 개혁자, 언론인, 국회의원, 대학 설립자, 대학교수와 총장, 정당 당수, 총리 등의 이름으로 탁월하게 활동한 것을 보면 수긍이 간다. 삶의 전 영역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고,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통해 진리를 증거코자 몸부림쳤던 하나님의 사람이다.

혼돈 속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카이퍼는 인간의 마음이 얼마든지 ‘거짓 자유’에 중독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중독의 해독제를 예술적 본능(원천)에서 찾으라고 말한다. 예술적 본능이란 무엇인가. 영성이다. 영성은 삶의 가장 깊은 심연과 맞닿아 있으며 공감 사랑 용서 책임 배려와 조화 등 인간의 근본적인 덕목들을 포함한다. 진정한 예술의 원천은 영성에 있으며, 가장 창조적인 예술성은 영성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영감(inspiration)의 어원은 라틴어 ‘영을 부어 넣음(inspirare)’에서 비롯됐다.

당시 교회는 새로운 사조에 대해 무관심했고 무기력했지만, 카이퍼는 진정한 예술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그는 하나님의 생명의 빛에 의해 형성된 ‘개혁주의 미학’과 기독교 예술의 방향을 각종 저술과 강연으로 제시했다. 카이퍼가 체계화한 개혁주의 미학이란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모든 예술을 창조, 타락, 구속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미학이다.

예술을 추구하는 이들이 ‘가짜 자유’가 아닌 ‘진짜 자유’를 누리고 창조성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나님에 대한 존경과 경외심을 가지고 그분을 슬프게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하나님 앞에서의 자유’,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는 ‘자신에 대한 자유’, 세상이 주는 고난을 감내하는 ‘세상에 대한 자유’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샘솟는 내적 통찰을 얻게 될 수 있다.

커다란 꽃다발과 날아다니는 연인들, 바이올린을 켜는 광대, 기묘한 동물과 성서 속 인물 등 다양한 이미지와 풍부한 색으로 동화적이고 자유로우며 환상적인 세계를 표현한 샤갈은 피카소와 더불어 20세기 최고 미술가로 꼽힌다. 그는 영감의 원천이 성서라고 말했다. “나에게 성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위대한 영감의 원천이다. (…) 나는 사람들이 이 그림들을 보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고 영적 깨달음과 종교적인 감정과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이 꿈은 가능할까? 인생과 마찬가지로 예술에서도 사랑이 바탕이 되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이제 우리는 마지막 보루,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해준 아름답고 숭고한 정신들을 회복해야 한다. 그것은 영성 회복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다. 성공과 돈에 연연해서, 남의 눈에 들기 위해서 자신을 버리지 말고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면 예술성은 빵에 넣은 누룩처럼 서서히 영향력이 발휘될 것이다.

이지현 종교2부 선임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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