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 너무 서둘러… 경협 재개보다 北에 비핵화 설득해야”

미국 싱크탱크 CSIS의 수미 테리 선임연구원이 지난 7일 워싱턴 CSIS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수미 테리 선임연구원은 “미국에서는 ‘한국 정부가 너무 서두른다’는 지적이 있다”면서 “한국 정부는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 검토보다는 북한에 비핵화를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좌초 직후 민감한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의 반대에도 북한과 경제협력 재개를 시도할 경우 한·미 관계는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계 미국인인 그는 미 중앙정보국(CIA)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한반도 전문가로 활동했다. 지난 7일(현지시간) 워싱턴에 있는 CSIS 사무실에서 테리 선임연구원을 만나 인터뷰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빈손으로 끝났는데.

“이해하기 힘든 결과였다. 협상 결렬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먼저, 북한이 전면적인 제재 해제라는 무리한 요구를 고수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장을 박차고 나왔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 가설이 맞다면, ‘노딜’로 협상을 끝낸 것은 잘한 것이다. 두 번째 가능성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협상 방식을 몰랐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처음에 터무니없이 높은 조건을 내걸다가 기준을 낮춰가는 게 북한의 오랜 협상 방식이다. 시장 상인들이 1달러짜리 물건에 20달러를 부르며 흥정을 시작하는 것과 같은 논리다. 하지만 이런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무리한 요구로 회담을 시작하자 더 듣지 않고 협상 파기를 선언했을 가능성도 있다. 두 번째 가설이 맞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인내심을 갖고 북한 얘기를 더 들어본 뒤 비핵화의 중간단계를 설정하는 합의문이라도 만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속내는 북한만이 알고 있다.”

-최근 북한의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 복구 움직임 등이 포착됐는데.

“도발적인 신호다. 그러나 북한의 의도를 파악하기 힘들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북한은 앞으로 6년 동안 그를 상대해야 한다. 하노이 정상회담이 빈손으로 끝났다고 해서 북한이 곧바로 대결구도로 회귀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북한이 위험한 시그널을 보내는 이유는 북·미 대화의 틀을 깨고 싶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화를 빨리 하고 싶다는 목적에 무게가 실린 것으로 판단된다.”

-향후 한반도 상황을 어떻게 전망하나.

“한·미는 ‘노(no) 군사훈련’, 북한은 ‘노(no) 핵·미사일 실험’을 유지하는 불안하고 어색한 평화가 유지될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이 만약 미사일 실험을 재개한다면.

“북한의 엄청난 도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비난을 자제하고 있다. 전략적 인내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실망’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 가장 높은 수위의 반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을 명분으로 미국 내 비핵화 회의론자들을 설득해 왔다. 만약 이 상황에서 북한이 미사일 실험을 재개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배신감을 느낄 수 있고, 미국 내에선 ‘약한 지도자’라는 비판이 터져 나올 것이다. 그럴 경우 트럼프 대통령도 강공책 말고는 선택이 없다. 북·미 관계는 다시 대결구도로 급속히 전환될 것이다.”

-북·미가 다시 비핵화 협상을 재개할 조건은 무엇인가.

“하노이 정상회담이 깨진 것은 북한이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북한이 먼저 전향적인 양보를 해야 한다. 미국은 아직도 북한과 대화할 의사가 있다. 지금 국면에서는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 등 구체적인 비핵화 의사를 미국에 전달하며 손을 내밀어야 한다.”

-대북 제재가 강화될 가능성은 있나.

“가장 큰 변수는 미국 의회다. 미 의회는 트럼프 행정부보다 북한에 더 강경하다. 미 상원에선 북한과 거래하는 금융기관이 미국 금융기관과 거래할 수 없도록 규정한 ‘오토 웜비어 대북 은행업무 제재법안’이 발의됐다. 이런 법안들이 쏟아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 정부는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를 검토 중인데.

“미국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개성공단·금강산 관광 재개를 검토하는 것은 한·미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한국이 북한과의 경협 의사를 포기하지 않을 경우 트럼프 대통령은 대응책으로 주둔비용 인상 등 주한미군 문제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크다.”

워싱턴=글·사진 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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