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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초등학교에 ‘하일 히틀러’… 꿈틀대는 반유대주의

사진=AP뉴시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증오’라고 불리는 반(反)유대주의가 최근 유럽과 미국에서 확산되고 있다. 유대인 혐오 정서가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극심하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세계 전체 인구의 0.2%에 불과한 유대인들은 자신이 혐오 범죄의 표적이 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시민들이 반유대주의 성향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경우가 늘고 있다. 프랑스 전역을 뒤흔들고 있는 노란조끼 시위대는 지난달 16일 유대인 철학자 알랭 핑켈크로트에게 “더러운 시오니스트” “이스라엘로 돌아가라”고 외치며 모욕적 발언을 퍼부었다. 핑켈크로트가 과격화된 노란조끼 시위를 비판했다는 이유에서다. 프랑스 알자스의 카첸하임 묘지에서는 유대인 묘비 80여개가 나치 문양의 스프레이 페인트로 칠해져 훼손되는 사건이 있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이곳을 유대인 단체 대표들과 방문하자 일부 프랑스 네티즌들은 “마크롱은 유대인의 암캐”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영국 노동당 의원 9명은 지난달 22일 제러미 코빈 당 대표의 반유대주의 노선을 비판하며 탈당했다. 좌파 성향인 코빈 대표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지 않고 이스라엘 정부를 비판해온 인물이다. 독일 작센주에서는 지난해 8월 반유대주의단체들의 대규모 시위 도중 유대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공격당했다.

미국에서는 어린 학생들까지 반유대주의에 물들고 있다. 최근 뉴욕 퀸즈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수십 개의 나치 문양과 ‘하일 히틀러(Hail Hitler·히틀러 만세)’라고 적힌 낙서가 발견됐다. 이 학교가 있는 지역은 유대인들이 밀집한 곳이다. 캘리포니아주 뉴포트비치의 고등학생들은 술잔을 나치 문양으로 정렬하고 히틀러식 경례를 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의 유대교회당에서 총기 난사 사건으로 11명이 숨진 지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벌어진 일들이다.

유럽과 미국에서 발생하는 유대인 혐오 범죄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유럽 국가 중 유대인 인구가 가장 많은 프랑스 내 반유대주의 공격은 2017년 311건에서 지난해 541건으로 74% 늘었다. 같은 기간 독일은 60%, 영국은 16% 증가했다. 미국에서는 유대인 혐오 범죄가 2017년 기준 전년 대비 37% 많아졌다. 마이클 오플래어티 유럽연합기본인권기구(FRA) 국장은 “반유대주의가 유럽에서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에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서방국가의 반유대주의가 2차 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반유대주의의 역사는 중세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대 민족은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 2000여년 동안 유럽 전역을 떠돌아 다녔다. 이 때문에 유대인들은 희생양으로 전락되기 쉬운 집단이었다. 12세기 중반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이 종교의식에 쓰이는 피를 얻기 위해 어린 아이들을 살해한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유대인들을 박해하고 처형하기 위한 빌미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특정 집단에 대한 악의적 비난을 일컫는 ‘피의 비방(blood libel)’이라는 표현이 생겼다.

극소수에 불과한 유대인들이 현대사회에서 전 세계 정계와 재계, 학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도 반유대주의의 한 원인이다. 반명예훼손연맹(ADL)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인 42%와 독일인 31%는 ‘유대인이 미국 정부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답했다. 억만장자 투자전문가 조지 소로스는 유대계라는 이유로 중앙아메리카 이민자 행렬(캐러밴·Caravan)의 자금줄이며,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려고 한다는 음모론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반유대주의가 심화되는 배경에는 극단주의 정치세력의 등장이 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온건한 우파와 중도 좌파의 붕괴가 반유대주의 확산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며 “극단주의 정당의 출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인종차별적 발언 등이 반유대주의자들에게 청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역사를 처절히 반성하던 사회 분위기는 퇴색되고 또 다시 유대인에 대한 증오의 감정이 움트고 있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는 반유대주의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FRA가 유럽연합(EU) 12개국의 유대인 1만6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90%가 반유대주의가 이전보다 심해졌다고 느꼈고, 30%는 실제로 공격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조사 대상의 3분의 1은 혐오 범죄의 표적이 될까봐 두려워 유대인단체 행사에도 참여하지 않는다고 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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