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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北 비밀 핵시설 내줄 것 요구… 김정은 거부하자 협상 접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하노이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열린 북·미 확대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마주앉은 채 발언하고 있다. 앞서 진행된 단독 정상회담까지는 북·미 간 협상이 원만하게 진행되는 듯했지만 확대회담이 당초 일정보다 길어졌고, 결국 회담은 결렬됐다. AP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두 번째 핵 담판에서 북·미 간 거대한 간극을 ‘톱다운’ 방식으로 뛰어넘으려다 끝내 실패하고 말았다. 김 위원장은 영변 핵시설 폐기와 제재 전면 해제를 맞바꾸려 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받지 않았다. 더 나아가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정보 당국이 파악한 북한 비밀 핵개발 시설을 들이밀며 김 위원장을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거의 모든 의제에서 김 위원장과의 인식 차가 확연히 드러나자 협상장을 나가는 ‘초강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28일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직후 베트남 하노이 JW메리어트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 위원장은) 기본적으로 모든 대북 제재를 해제해주길 원했지만 우리는 그걸 받아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측은 우리가 요구한 핵시설을 일정부분 내줄 용의가 있었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그 반대급부로 대북 제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로 이 문제 때문에 우리는 협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상응 조치를 취하면 영변 핵시설을 폐기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김 위원장은 이날 회담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영변 핵시설 폐기를 대가로 대북 제재를 전면 해제해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 해제를 위해서는 더 많은 것을 받아내야 한다며 팽팽하게 맞서다 회담장을 나가버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 핵시설은 “덜 중요한 곳”이라며 “(북측은) 우리가 중요시하는 곳은 내주려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 측은 위성사진 등 북한 비밀 핵시설 관련 정보를 바탕으로 북측을 거세게 몰아붙인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그 나라(북한)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면서 “우리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다른 것을 찾았다”고 주장했다. 한 기자가 ‘우라늄 농축시설을 말하는 것이냐’고 질문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정확하다”면서 “우리는 그 외에도 다른 것도 제기했다. 내가 보기에 북측은 우리가 파악한 정보를 듣고 놀란 것 같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기자회견에 참석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영변 외에 규모가 굉장히 큰 다른 핵시설이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첩보위성 등 미국 감시망에 노출돼 있는 영변 핵시설 외에도 고농축우라늄(HEU) 생산을 위한 원심분리기 등 비밀 핵시설을 상당수 보유 중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원심분리기는 지하시설에 은폐가 용이해 첩보위성으로는 파악이 매우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을 미뤄 미국은 북한 내 은폐시설도 꽤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비핵화 로드맵 논의에서도 이견은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폼페이오 장관은 “시간과 순서 문제도 있었다”면서 “미사일도 빠졌고 핵탄두와 무기체계도 제외돼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핵)리스트 작성과 신고 등도 합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미국은 핵시설과 핵무기는 물론 탄도미사일과 생화학 무기까지 신고 리스트에 담아 최대한 빨리 폐기해야 한다고 북측을 재촉했던 것으로 보인다.

북·미 양측 실무진은 이날 두 정상이 오찬을 마치고 함께 서명할 합의문 작성을 이미 완료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사실 사인할 종이를 준비해 뒀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았다”면서 “내가 사인을 했으면 사람들이 ‘끔찍한 합의’라고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합의문은 양측 실무진 간 협의를 통해 작성되는 점을 미뤄 트럼프 대통령이 참모들과 상의 없이 독단적으로 결렬을 선언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결정이 폼페이오 장관 등 참모들과 고민한 끝에 내린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하노이=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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