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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간호사가 된 캐나다 간호사 “극단선택 내모는 구조 바뀌어야… 나비효과 있길”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차현주씨는 “현재 간호 시스템이 환자에게도 얼마나 위험한 문제인지 알린다면 사람들의 인식도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최종학 선임기자


“왜 자살까지 하지? 뭐가 그렇게 문제일까? 호기심 반, 안타까움 반으로 한국에 왔는데 실제 의료 현실은 훨씬 충격적이었죠.”

캐나다의 4년차 간호사인 차현주(본명 케이트 차·28)씨는 19일 한국의 ‘제59회 간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시민운동가도 아닌 평범한 간호사가 한국에서 국가시험을 치른 이유는 국내 의료 현장의 ‘충격적 현실’을 목격해서다. 초등학생 시절 캐나다로 이민 간 한국계 캐나다인인 차씨는 한국 간호사들의 열악한 상황을 전해 듣고 “직접 경험하고 바꾸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차씨가 한국에서 간호사가 돼야겠다고 결심한 건 지난해 5월 즈음이다.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 이국종 교수가 출연한 방송 등을 보며 한국의 의료 시스템에 관심을 갖고 있던 터였다. 박선욱 간호사의 죽음을 계기로 간호업계 ‘태움’ 문화가 알려지자 차씨는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끝날 수 있는 건데 이상하게도 그럴 수 없었다. ‘왜 사서 고생하느냐’는 가족의 만류에도 차씨는 휴가를 내 시험을 준비했다.

간호사 모임 ‘행동하는 간호사회’를 만나 현직의 이야기를 들으며 결심은 굳어졌다. 차씨는 “한국의 간호 시스템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모를 정도로 엉망”이라며 “‘태움’은 구조적 문제”라고 강조했다. 친구를 희귀병으로 잃을 뻔한 경험도 영향을 미쳤다. ‘환자 보호자’의 입장을 절실히 느낀 차씨는 “간호사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역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킬 수 있는 생명을 잃는 상황은 더 있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중환자를 1대 1로 돌보는 캐나다와 달리 한국은 간호사 1명이 중환자 5명을 담당해요. 중환자들은 자가호흡이 되지 않고 1분 안에도 상태가 시시각각 변하는데 5명을 돌보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차씨는 과도한 업무, 준비되지 않은 채 현장에 내던져지는 상황 등이 악순환을 만든다고 지적했다. 캐나다는 중환자실 간호사에 지원하려면 1년 이상의 임상 경력과 최소 1년 과정의 중환자실 간호사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반면 한국은 갓 대학을 졸업한 간호사도 중환자를 맡을 수 있다.

차씨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중환자를 돌본다는 건 환자에게도 위험하고 간호사에게도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가 엄청나다”며 “간호사 교육에 대한 책임을 개인이 지지 않도록 기본적인 틀이 갖춰져야 한다”고 말했다. 신입 간호사에 대한 교육 체계부터 마련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의사와 상관없이 부서가 배치되는 점도 문제로 꼽았다. 본인이 지원하지 않는 이상 부서 변경이 없는 캐나다에선 간호사도 전문성을 키울 수 있다. 차씨는 “지난 1월 목숨을 끊은 서지윤 간호사도 원치 않는 행정직에 배정된 걸로 알고 있다”며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간호사에게 자율성이 없다는 게 놀라웠다”고 했다.

국영 병원이 대부분인 캐나다는 한국과 근본적으로 의료체계가 다르다. 차씨 역시 하루아침에 시스템을 바꿀 수 있으리라 여기지는 않는다고 했다. 다만 꾸준히 목소리를 내 10년이 걸리는 변화를 5년으로 당기는 게 차씨의 바람이다.

“나비효과라고 하잖아요. 제가 그동안 배우고 경험한 것을 조금 더 나눠서 한 생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다면, 제가 태어난 나라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에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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