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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샛강에서-전석운] 하노이 회담도 긴 여정의 일부



첫 만남만큼은 아니라고 해도 8개월 만의 재회는 여전히 우리를 긴장시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두 번째 만남이 13일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엔 베트남 하노이다. 하노이 선언이 8개월 전 싱가포르 선언보다 얼마나 진전된 내용을 담아낼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회의감이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북·미 간 정상외교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고무적인 일이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장소가 주는 메시지는 1차 회담 때보다 더 선명하다. 북한이 비핵화를 하면 경제적 번영을 누리도록 미국이 돕겠다는 것이다. 1차 회담이 열린 싱가포르는 사실 북한이 흉내내기에는 ‘넘사벽’ 수준의 선진국이다. 싱가포르의 1인당 GDP는 6만 달러에 육박하지만 북한의 개인소득은 2000달러가 안 된다. 두 나라 사이의 유사성도 낮다.

반면 베트남과 북한 사이에는 역사적 공통점과 유대감이 있다. 두 나라는 모두 사회주의 국가이면서 미국을 상대로 치열한 전쟁을 치렀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를 기록했고, 한국전쟁에서는 북한과 휴전협정을 체결했다. 전 세계에서 미국과 전투를 벌이고 무릎을 꿇지 않은 나라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세계 경제로부터 고립되면서 가난을 면치 못하는 후유증은 극복하지 못했다.

견디다 못한 베트남은 1990년대 들어 과감하게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는 승부수를 뒀다. 이후 고속성장을 거듭했다. 어느덧 베트남의 1인당 GDP는 3000달러를 넘어섰다. 한때 군사원조를 받았던 북한을 훌쩍 뛰어넘었다. 반면 북한은 70년 가까이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하지 못하면서 최빈국 수준으로 떨어졌다.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핵무기와 ICBM 개발에 매달려 미국과 군사충돌 직전까지 가는 벼랑 끝 전술을 고집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두 번째 회담 장소로 베트남을 선택한 의도는 명백하다. 베트남처럼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면 북한도 잘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핵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김 위원장도 베트남식 경제성장 모델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하노이 회담을 계기로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폐쇄하고, 미국은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개성공단 가동을 허용하는 빅딜이 이뤄질지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실천할지에 대해서는 부정적 전망이 지배적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싱가포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미국의 핵 전문가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는 북한이 싱가포르 회담 이후에도 핵무기 개발을 계속해 핵탄두 5~7개 분량의 핵물질을 생산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사령관도 12일(현지시간) 미 의회에서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노력을 벌이고 있다는 어떤 증거도 포착되지 않고 있다”고 증언했다.

이에 대해 북한이 약속을 어긴 것이라는 지적이 있는가 하면, 구체적인 합의가 없었기 때문에 합의 위반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평화와 번영을 향한 양 국민의 열망에 따라 북·미 간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고, 항구적이고 지속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노력을 기울인다’고 했던 싱가포르 선언과 배치되는 행보인 것은 분명하다. 기술적인 차원에서 봐도 이번 회담이 뚜렷한 성과를 낼지는 의문이다. 실무적 차원의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두 정상이 만나는 상황은 싱가포르 회담 당시와 달라지지 않았다. 2차 정상회담이 임박했지만 여전히 ‘시간과 이해가 부족하다’는 게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설명이다. 이번 회담도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결단을 돋보이게 하는 톱다운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분명한 건 회담이 결렬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것이다. 어떤 결론이 나든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담을 성공이라고 자평할 것이다. 실패로 규정하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도 잃을 게 없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 동안 북·미 정상회담은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할 이유다. 긴 여정의 일부일 뿐이다.

전석운 뉴프로젝트전략팀장 겸 논설위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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