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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와 휴매너티] 뮤지엄 3.0, 소프트 파워 역할을 기대한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프랑스 대혁명 피의 역사와 함께 탄생한 근대적 뮤지엄 그 이후 지속적인 변모 거쳐
‘벽이 없는 뮤지엄’에 이르러 사회적 약자들을 포용하는 복지의 핫스팟이 되길…


뮤지엄을 연구하는 한 지인이 내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요새는 사람들이 작품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셀피를 찍으러 온다고. 셀피에 최적화된 전시를 하는 미술관이 늘고 있으며 이는 유독 한국에서 두드러진 현상이라고. 작품이나 큐레이팅의 깊은 뜻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나 여기 왔소”에 열광하는 세대를 보며 디지털 문화의 천박함을 한탄했다.

전통적인 큐레이터나 예술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그대로 소비하지 않으려는 대중을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대중의 입장에서 보면 문화 예술 콘텐츠를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소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경건하지만 다소 주눅 든 일방통행식 관람 방식에서 벗어나 이제는 나만의 방식으로 뮤지엄 콘텐츠를 재매개(Remediation)하게 된 것이다. 밀레니얼들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의 SNS로 자기 식으로 재가공한 콘텐츠를 자유롭게 유통하고 소비하고 있다.

문화 예술의 민주화일까, 아니면 몇몇 식자들이 우려하는 하향 평준화일까? 이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뮤지엄의 기원부터 짚어갈 필요가 있다. 뮤즈(Muse)들이 사는 집(Um)이라는 영감 어린 그리스 어원을 가졌지만 근대적 뮤지엄은 프랑스 대혁명의 피의 역사와 함께 탄생했다. 단두대에서 사라진 루이 16세가 살던 곳에 시민들이 왕족과 성직자로부터 탈취한 유물과 예술품들을 채워 넣은 곳이 루브르 박물관이다. 시민들이 중심이 된 새로운 ‘국가 만들기’의 정신적 지주로서 루브르 박물관은 시민교육의 장으로 출범했다.

이후 19세기 산업혁명을 거치며 뮤지엄은 산업 자본과 결합했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과 같이 석유나 금융 등으로 돈을 번 신흥 부호들의 막대한 컬렉션을 바탕으로 ‘고상한 취향’의 신전으로서 뮤지엄들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20세기에 이르면 피에르 부르디외의 지적처럼 고급과 저급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구별짓기’로서의 문화가 새로운 자본으로 등극하며 그 중심에 상징권력으로 뮤지엄이 자리잡았다. 이러한 문화 자본이 여타 다른 자본들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는 유명 미술관과 박물관의 이사회 구성을 보면 한눈에 알 수 있다.

한편 유럽에서 시작된 부르주아 혁명이 신세계로 건너오면서 문화 예술의 대중화를 가속화했다. 구겐하임, 모마(MoMA) 등으로 대표되는 블록버스터 뮤지엄들이 등장하면서 적극적으로 대중들을 엘리트들의 미적 가치의 세계로 흡입했다. 대중들도 뜨겁게 호응했다. 블록버스터 전시가 유행하고 이는 국경을 넘어 미적 가치의 표준화를 가져왔다. 1980년대 이후 글로벌 미술 시장의 도래와 함께 취향의 세계적인 자본화와 상품화가 완성되었다.

그러나 뮤지엄의 역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사회적 맥락과 함께 진화해 온 뮤지엄은 디지털 사회의 도래로 또다시 변모하고 있다. 대표적 예가 ‘벽이 없는 뮤지엄’이다. 미술계의 권위 있는 상인 터너(Turner) 상이 2015년 리버풀의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참여한 건축가 집단인 어셈블(Assemble)에게 돌아간 사건은 상징적이다. 다수의 젊은 건축가들로 구성된 이 그룹의 작업은 ‘낡은 집들의 배관공사가 주를 이루었다’고 한다. 예술은 이제 화이트 월을 넘어 도시로 지역으로, 그리고 모바일폰을 비롯한 디지털 기기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창작자와 관객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도 새로운 뮤지엄의 특징이다. 디지털 작품은 관객들의 참여로 완성된다. 떠들거나 작품에 손대면 안 되던 뮤지엄이 적극적인 상호작용을 촉진하는 놀이터가 되어간다. 숭고미 또는 관조의 미학에서 유희와 참여의 미학으로 옮겨가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세상을 내 손 안으로 끌어들여왔으며 모든 시간과 공간이 나를 중심으로 재편된다. 더구나 이제 누구나 스마트폰을 통해 즉각적으로 콘텐츠를 생산하고 확산할 수 있게 되었다. 재생산된 콘텐츠는 촘촘한 SNS망을 통해 순환되며 어떤 집단적 무의식, 나아가 새로운 가치를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흐름을 대표하는 사례가 2011년부터 2014년에 걸쳐 BMW와 구겐하임 미술관이 진행한 도시랩(City Lab) 프로젝트다. 뉴욕과 베를린, 그리고 뭄바이를 돌며 도시성(urbanism)이라는 주제로 예술, 사회학, 기술, 건축,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담화, 워크숍, 영화감상, 메이킹 등을 진행했다. 시민들의 반응이 열광적이었다. ‘월가를 점령하라’로 떠들썩했던 2011년 같은 시기 뉴욕에서는 5만명 이상의 시민이 대안적인 삶을 모색하는 구겐하임의 도시랩에 참여했다.

지속가능성이라든가 양극화와 같은 구조적 모순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기득권에서는 해결의 실마리조차 내놓지 못하는 이때, 새로운 사회적 가치의 생산자로서 미래 뮤지엄의 역할을 기대해본다. 이미 낡아버린 정치 경제적 논리가 아닌 삶을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문화적 접근이 필요한 때다. 물건이 아닌 사람이 일생을 통해 만들어져가야 하는 가장 중요한 작품이며, 그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사회야말로 예술적 영감과 문화적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마치 도시국가 그리스에서 극장이 도시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듯 말이다.

미래 뮤지엄은 더욱 적극적으로 사회적 가치들을 실험하고 소통할 필요가 있다. 콘텐츠 창조가로서의 개인의 역량을 증대함은 물론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통한 혁신의 허브로서, 사회적 약자들을 포용하는 복지의 핫스팟으로, 평생교육의 장으로, 지속가능성의 촉진자로서, 나아가 지역의 정체성과 사회적 단합을 위한 사랑방 구실을 하는 소프트파워의 역할을 기대한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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