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장소의 정치학… 北 “하노이” 美 “다낭” 막판 줄다리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지난해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의 카펠라 호텔에서 오찬을 함께한 뒤 호텔 주변을 산책하고 있다. 당시 두 정상의 산책은 통역 동행 없이 이뤄졌다. AP뉴시스


북한과 미국이 2차 정상회담 개최 도시를 두고 막판까지 진통을 겪고 있다. 북한은 하노이, 미국은 다낭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열린 1차 북·미 정상회담은 회담 1달 전에 시기와 장소가 최종 결정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두 정상의 대면까지 3주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도 공식 발표가 나오지 않고 있다. 지난해 평양과 판문점, 싱가포르를 두고 기싸움을 벌였던 북·미가 이번에도 같은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대한 담판을 앞둔 양측은 항상 장소를 놓고 겨뤄 왔다. 회담 장소가 ‘홈그라운드’냐 아니냐, 또는 중립지역이냐 아니냐는 협상의 중요한 요소다. 그런 만큼 북·미 양측은 장소 선정에서부터 기선제압을 위해 줄다리기를 하는 상황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6일(현지시간) “미국과 북한이 베트남에서의 핵 협상에 앞서 회담 개최지 선정이라는 긴급한 문제에 직면했다”면서 “정상회담과 같은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약 3주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양측이 서둘러 개최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북한은 북한 대사관이 있는 하노이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사관이 있으면 의전과 경호에 훨씬 유리하다. 북한이 1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지로 싱가포르를 선뜻 받아들인 것도 북한 대사관 소재지이기 때문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선 하노이에서 회담을 할 경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외에 응우옌 푸 쫑 주석과 응우옌 쑤언 푹 총리 등 베트남 지도부와도 양자외교를 추진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실제로 베트남 국빈방문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중국, 싱가포르 외에 다른 나라를 방문한 적이 없는 김 위원장이 이번 회담을 서방세계에 자신을 과시하는 기회로 만들기 위해 여러 대형 이벤트를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프랭크 자누지 전 미 상원 외교위 정책국장은 WP에 “김 위원장은 미국과의 평화 프로세스 추진과 동시에 북한을 아시아와 세계무대에서 정상국가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하노이를 선호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미국 관리들은 다낭 개최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평야에 들어선 대도시인 하노이와 달리 다낭은 해변 휴양도시다. 고립된 위치에 있어 미국 측은 경호 계획을 짜는 데 보다 수월하다. 다른 이슈로 집중력을 잃는 일 없이 1박2일을 비핵화 논의에만 전념하기에도 좋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다낭을 찾은 경험도 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미국 관리들은 최근 다낭을 찾아 해변에 위치한 호텔 객실을 수백 개 예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비핵화 이후의 ‘밝은 미래’ 모델로 다낭을 김 위원장에게 소개하기에도 적합하다. 베트남 정부는 다낭을 세계적인 휴양지로 키우기 위해 해외 투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김 위원장 역시 강원도 원산과 양강도 삼지연 등지를 관광도시로 꾸미는 데 관심을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화려한 다낭 풍경을 보여주며 더욱 전향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하라고 설득하는 전략을 쓸 수도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1차 북·미 정상회담 직후인 지난해 7월 하노이에서 ‘베트남 모델’을 북한에 제안한 바 있다. 베트남은 회담 개최 도시가 어디로 결정되든 상당한 홍보 효과를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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