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시운] 평범한 이들의 존엄한 생애사



병원생활을 할 때, 다양한 사람들의 생애사를 육성으로 들을 기회가 있었다. “작가라고? 그럼 내 얘기를 써봐. 책으로 쓰면 열두 권은 족히 나올 거야.” 내가 소설가라는 걸 알게 된 이들이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살아온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두 시간 만에 끝나기도 했고 며칠에 걸쳐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했다. 보통은 한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면 다음 사람이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같은 병실을 쓰는 이들의 경험담이 뒤죽박죽 뒤섞여 이야기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했다. 사실 나는 나이 든 이들의 생애사에 특별히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잘 쓸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지만, 그들을 말릴 수가 없었다. 우리는 짐작조차 해 본 적 없는 커다란 불행과 직면해 있는 사람들이었다. 너나없이 지독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 달라진 몸을 어떻게든 받아들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무엇보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병원생활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책으로 쓰면 열두 권은 족히 될 거라던 그들의 긴 이야기엔 비슷한 패턴이 존재했다. 만약 그런 이야기를 책에서 보았다면 나는 그 책을 끝까지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봤다면 뻔하디 뻔한 막장드라마라고 욕하며 채널을 돌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인생을 직접 살아낸 이들의 입을 통해 듣는 이야기가 주는 무게감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나는 인생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들을 위로했다. 그건 아주머니 잘못이 아니에요. 화를 내셔도 돼요. 다 버리고 도망치지 그러셨어요. 그 힘든 시간을 어떻게 견디신 거예요. 하나마나 한 위로에도 그들은 고마워했다. 그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그들의 긴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벅차면서도 고통스러웠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수많은 고통을 견디며 기어이 살아낸 그 인고의 세월을 고스란히 받아 안는 느낌이었다. 이후 나는 어떤 인생도 가볍게 다뤄져선 안 된다고 믿게 되었다. 타인의 삶을 이유 없이 조롱하고 멸시하는 태도를 참을 수 없다. 나와 다르다고, 내가 알지 못한다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타인의 삶을, 그 생생한 고통을 함부로 대하는 이들과는 나눌 수 있는 미래가 없다.

황시운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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