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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계상, 간절하게 연기하고 기적같은 팬사랑에 감동하며 [인터뷰]

영화 ‘말모이’의 주연배우 윤계상. 그는 “난 풀지 못하는 숙제를 좋아한다. 나 자신을 지독하게 몰아붙일 때 행복감을 느낀다. 그러니 연기가 얼마나 재미있겠나. 해도 해도 끝이 없으니 미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말모이’에서 윤계상이 연기한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이 까막눈 판수(유해진)에게 글을 가르치는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냥, 진정성인 것 같아요. 제가 배우로서 가장 간절하게 품을 수 있는 건 (작품 속) 그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거든요. 그러니까 집착할 수밖에 없는 거죠. 끈기가 생길 수밖에 없고…. 그런 것 같아요.”

배우 윤계상(41)을 아는 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법하다. 그가 지켜 온 소신이란 그렇게나 단단한 것이었다. ‘아이돌 출신’ 꼬리표를 떼어내고 당당히 연기자로 자리매김하기까지 그는 누구보다 치열했다. “이렇게 어려운 역할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는 신작 ‘말모이’에서 역시 마찬가지였다.

오는 9일 개봉하는 영화 ‘말모이’는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극에 달했던 1940년대, 우리말과 글을 지켜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극 중 윤계상이 맡은 배역은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 친일파 아버지를 둔 그는 ‘민족의 정신인 말을 지키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길’이란 신념으로 비밀리에 전국에서 말을 모아 사전 편찬을 이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윤계상은 “완성본을 보고 나니 ‘이 영화를 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말모이 사건을 접하면서 죄송함과 동시에 감사함이 느껴지더라. 그런 마음이 관객들에게도 똑같이 전해지길 소망한다”고 얘기했다.

쓰라린 역사를 바탕으로 한 캐릭터이기에 감정 표현 수위를 잡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정환의 막중한 책임감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걸까, 고민하다 죽을 뻔했습니다(웃음). 보통 배우들은 자신의 실제 경험에 투영해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정환이 가진 감정의 깊이는 너무 깊은 거예요. 감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요.”

문어체 대사도 버거웠다. 극 중 조선어학회 심부름꾼으로 일하는 까막눈 판수(유해진)와의 대화 장면에서 특히 그랬다. “말투를 부드럽게 풀면 정환이 가진 무게감이 줄어들고…. 죽겠는 거죠 진짜.” 감정 표출하는 장면을 찍을 때는 스무 번 넘게 테이크를 반복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배우로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감정을 느꼈다”는 그다.

“저는 이번 작품에 대한 후회가 하나도 없어요. 누가 뭐라 하셔도 괜찮습니다. 정말 최선을 다했거든요. 제 에너지를 바닥까지 다 썼어요. 그렇게 기회를 주신 엄유나 감독님께 감사하죠. ‘너 하는 데까지 해봐. 그래도 난 널 포기하지 않아.’ 그런 마음을 받는 순간, 되게 행복해지잖아요.”

조선족 폭력조직 두목 장첸을 연기한 전작 ‘범죄도시’(2017)의 신드롬 이후 내놓은 차기작이라기에 ‘말모이’는 다소 의외다. 윤계상은 “화려한 다음 행보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왜?’라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우리들의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가 지금의 나에게 절실하다”고 했다.

“‘범죄도시’의 흥행은 정말 감사한 일이죠. 요즘 남성분들이 되게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와아, 첸 형님’ 그러면서(웃음). 하지만 언젠간 잊히겠죠. 저도 거기에 머물러있지 않아요. 물질적인 건 결국 소모되고 없어지니까요. 그때의 감정, 기분, 추억. 그런 것들만 소중하게 간직하면 될 것 같아요.”

그룹 god 멤버이기도 한 윤계상은 오는 13일 데뷔 20주년을 맞는다. 기념일에 맞춰 지난해 말부터 이어 온 전국투어 콘서트의 앙코르 공연을 연다. “감사할 따름이죠. 어떻게 이런 사랑을 받아요. 우리는 점점 늙고 실력도 예전만 못한데, 팬분들은 한번 사랑했으니 계속 응원해주시는 거잖아요. 참 기적 같은 일이죠.”

폭풍 같았던 20, 30대를 지나 40대를 맞은 그에게는 여유가 담뿍 묻어난다. “앞으로요? 지금처럼 잘 걸어갔으면 좋겠어요. 제게 주어진 삶의 여정들을 재미나게 잘 보내고 싶어요. 그래서 게을러질 수가 없어요. 더 부지런해지고 있죠. 때로 힘듦이 찾아와도 이 또한 지나가겠지, 버텨내는 용기도 생겼고요(웃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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