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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슬린 스티븐스 “북·미, 다양한 레벨서 더 자주 만나 더 대화 나눠야”

캐슬린 스티븐스 한미경제연구소장이 지난 17일 워싱턴의 KEI 사무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스티븐스 소장 왼쪽 뒤편에 ‘공작선과 고전무용복’이라는 한글 제목의 그림이 걸려 있다. 그는 한국에 대한 관심이 여전히 높다.


캐슬린 스티븐스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은 “북한 비핵화 협상 진전을 위해 북한과 미국이 다양한 레벨에서 더 자주 만나 더 넓고 깊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북·미 대화가 정상외교에 의존하는 측면이 있다”며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의미 있는 결과물이 나오기 위해선 양국 실무 차원에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스티븐스 소장은 “지금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라고 하지만 북한이 핵실험을 하지 않는 것만 해도 엄청난 진전이 이뤄진 것”이라며 “올 오어 나싱(all or nothing) 방식으로 비핵화 문제를 접근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2008년 10월부터 3년간 주한 미국대사를 지내며 북핵 문제에 깊이 관여했던 스티븐스 소장을 지난 17일 워싱턴의 KEI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신뢰하는가.

“북한의 핵 개발과 비핵화 주장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북한 지도자들은 다양한 형식으로 비핵화 주장을 펼쳐 왔다. 그러나 북한을 벗어나 외국(싱가포르)에서 미국 대통령을 만나 비핵화에 합의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것은 처음이다. 의미 있는 진전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 역사를 보면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북한은 힘겹게 완성한 핵 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해체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비핵화는 과정이다. 어려운 단계에 직면했을 때 이를 풀어가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미국은 2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 적극적이다. 2차 회담이 성공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2018년 비핵화 협상의 특징은 ‘정상외교’였다. 북·미 정상회담과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이 비핵화 국면을 이끌었다. ‘톱다운’ 방식의 외교는 교착 상태를 뚫고 협상의 속도를 내게 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정상회담에서도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 현재 북·미 대화는 북한의 핵 신고와 미국의 제재 해제 등을 놓고 막힌 상태다.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 난제 해결을 위해선 두 정상 간 합의도 중요하지만 양측의 신중하고 철저한 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차 정상회담에서 의미 있는 합의문을 발표할 수 있다.”

-북·미 대화의 교착 상태를 풀 수 있는 해법이 있다면.

“가장 확실한 방법은 북·미가 더 자주 만나 더 넓고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조언이지만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 북핵 협상을 경험해본 입장에서 말하자면 지금 북·미 물밑 대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성과를 내는 것 같지는 않다. 정상들이 모든 문제를 풀 수는 없다. 실무진이 세세한 문제를 담당해야 한다. 교착 국면을 풀기 위해선 정상뿐만 아니라 모든 레벨에서 대화와 협상을 해야 한다. 그리고 북·미는 협상이 잘 진행될 때에만 대화를 나눠선 안 된다. 협상이 교착 국면을 만나도 꾸준히 계속 만나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상대방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북한은 제재 완화와 체제 안정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핵 신고 등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원하고 있다. 이들 이슈는 한자리에서 단번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북한 비핵화 문제를 올 오어 나싱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대단히 어려운 문제다. 36년간의 외교관 생활에서 얻은 것이 있다. 협상에 나설 때는 장기적 관점에서 낙관론자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풀 수 있다’는 확신 없이 협상에 나서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하지만 단계별로는 항상 회의론자가 돼야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내가 주한 미국대사를 지낼 때와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변화가 한반도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부분도 없지 않다. 긍정적인 태도로 북·미 대화를 지켜보되 과거 비핵화 협상이 실패했던 대목을 반추해보면서 협상을 바라보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비핵화 협상에서 한국 정부의 역할을 어떻게 평가하나.

“문재인 대통령은 어려운 시기를 잘 관리해 왔다고 본다. 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남북 관계 진전 역할을 부탁했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협상장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문 대통령에게 북한을 잘 다독여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비핵화 문제와 관련해 한·미 간에 속도 차이가 나는 것은 놀랍지 않은 일이다. 똑같이 북한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한국과 미국은 다른 전술을 구사했다. 북한의 비핵화와 남북 관계 진전이라는 한·미의 목표는 같다. 그러나 그 목표를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는 다른 문제다. 한·미가 북한 비핵화 협상과 대북 제재 등을 조율하기 위해 워킹그룹을 신설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본다.”

-한·미 관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는데.

“한·미 정부는 서로에 대한 필요성을 잘 알고 있어 공조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역대 미국 대통령과 달리 동맹에 대해 공격적인 발언을 내놓는다. 한·미동맹이 약화됐다는 주장이 나오는 데는 트럼프 대통령의 책임도 있다. 그런데 유럽을 가보면 더 심각하다. 유럽 국가들은 미국과의 동맹에 대한 걱정이 매우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이 방위비를 더 내놓을 것을 요구하며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한·미 관계는 탄력적이다. 긴장이 느껴지더라도 다시 동맹 관계로 돌아오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한·미 관계는 이제 제도화돼 위기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정부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많은 기구와 기관들이 경제 등을 포함해 다양한 이슈에 얽혀 있다. 또 역사와 문화는 다르지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동의 가치를 공유하는 관계가 됐다.”

스티븐스 소장은

캐슬린 스티븐스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은 2008년 10월부터 3년간 여성 최초로 주한 미국대사를 지냈다. 한국에서 11년을 살았다. 외교관으로 9년 근무했고, 1975년부터 2년간 평화봉사단원으로 충남 예산중에서 영어교사로 일했다. 이때 심은경이라는 한국 이름을 얻었다. KEI는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예산 지원을 받는 워싱턴의 싱크탱크다.

워싱턴=글·사진 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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