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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안주인은 나야” 멜라니아와 이방카의 ‘궁중암투’






11살 차이의 새엄마와 큰 딸. 표현하기 힘든 사이다. 게다가 의붓딸은 새엄마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와 큰딸 이방카 백악관 보좌관 얘기다.

미국 언론인 마이클 울프가 트럼프의 대선 과정과 취임 1년간의 내막을 폭로해 베스트셀러가 됐던 ‘화염과 분노’에는 이 불편한 모녀 관계를 설명한 대목이 있다. 멜라니아는 2014년 트럼프가 대선 출마를 진지하게 고민할 때 트럼프의 당선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몇 안 되는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선거운동과 거리를 두려고 애썼던 이방카는 친구들에게 “멜라니아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은 아버지가 출마하면 확실히 이길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라고 놀리고 다녔다. 울프는 멜라니아가 단지 트럼프의 당선을 예상한 것일 뿐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것은 원치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방카는 ‘미니 트럼프’로 불린다. 아버지의 판박이라는 뜻이다. 트럼프의 자녀 중 아버지와 가장 친하다. 또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 아버지의 꿈을 비웃고 다녔던 이방카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주변의 모든 반대를 무릅쓰고 남편과 함께 백악관에 입성했다. ‘미니 트럼프’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 사례다. 남편 재러드 쿠슈너는 백악관 선임보좌관으로 기용됐다. 이 부부를 지칭하는 ‘자방카’가 트럼프 행정부의 최고 실세라는데 이견은 없다.

멜라니아는 ‘은둔의 퍼스트레이디’였다. 슬로베니아 출신인 그는 미 역사상 두 번째로 외국에서 태어난 영부인이다. 악명 높은 플레이보이를 남편으로 둔 결혼 생활은 평탄하지 않았다. 이 부부는 뉴욕의 트럼프타워에 함께 살았으나 층이 달랐다. 멜라니아는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 직후에도 5개월간 따로 살았다. 아들 배런이 학기를 마칠 때까지 뉴욕에 머문 탓이다. 백악관에서도 이 부부는 각방을 쓴다고 한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만 바라보며 침묵하던 멜라니아가 베일을 벗으면서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미국 언론은 최근 두 사람의 궁중암투에 대한 얘기를 쏟아냈다. 백악관의 안주인 자리를 놓고 ‘파워게임’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싸움은 극적인 요소가 많다. 퍼스트레이디와 퍼스트도터(first daughter·대통령의 딸)의 대결이며, 새엄마와 의붓딸의 갈등이다.

이들의 불화설은 끊이질 않는다. 영부인과 장녀의 역할이 중복되는 바람에 생기는 필연적인 갈등이라는 분석도 있고, 이방카가 멜라니아의 영역을 침범하면서 다툼이 일어났다는 해석도 나온다. 백악관은 대통령 집무실, 이방카 사무실이 있는 웨스트윙과 멜라니아의 침실·사무실이 위치한 이스트윙으로 나뉘어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두 사람은 상대방 건물 쪽에 눈길도 주지 않는다.

물밑 신경전은 12월 들어 전면전으로 비화됐다. 도화선은 차기 백악관 비서실장 인선이었다. 존 켈리 비서실장의 연말 퇴임이 확정되면서 후임으로 마이크 펜스 부통령 비서실장인 닉 에이어스가 사실상 낙점을 받았다. 트럼프가 재선을 위해 선거전문가 에이어스를 뽑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에이어스가 돌연 고사했다. CNN방송 등은 ‘에이어스 카드’를 무산시킨 보이지 않는 손으로 멜라니아를 지목했다. ‘자방카’가 눈엣가시였던 켈리 비서실장을 몰아내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에이어스를 선택하자 멜라니아가 이를 막았다는 것이다. 어부지리로 백악관 비서실장 자리를 꿰찬 사람은 믹 멀베이니 백악관 예산관리국장이었다. 하지만 WP는 멀베이니가 이방카 부부에게 충성을 맹세했다고 전했다.

정치에 무관심했던 멜라니아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올해 5월부터다. 멜라니아는 어린이들을 왕따 피해나 약물중독으로부터 지키는 ‘비 베스트(Be Best)’ 캠페인을 시작했다. 또 남편이 밀어붙이는 정책에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펼치기도 했다. 중남미 불법이민자들에 대한 ‘부모·자녀 격리 정책’이 대표적이다.

멜라니아는 최근 공격성마저 보인다. 지난 10월 자신의 아프리카 순방 때 노골적으로 비협조적이었던 미라 리카르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의 경질을 요구하는 성명을 전격 발표했다. 이를 주도한 인물은 영부인실 대변인인 스테파니 그리셤이었다. 그리셤은 멜라니아의 오른팔이자 정치적 경호실장이다. 리카르델은 쫓겨났다.

이번 궁중암투는 승자 없이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멜라니아의 대중적 강점은 동정심이다. 멜라니아는 한 인터뷰에서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따돌림을 많이 당한 사람 중 하나”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CNN방송은 12월 여론조사에서 멜라니아에 대한 호감도가 43%를 기록하며 10월(54%)에 비해 두 달 만에 11%가 급락했다고 지난 13일 보도했다. 남편을 닮아간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방카도 상황은 좋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 2년을 독주하면서 적이 많이 생겼다. “워싱턴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려면 이방카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말도 부담스럽다.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스캔들로 사면초가에 몰렸는데, 이방카도 타깃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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