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제재망 조이는 美에 “비핵화 길 영원히 막힐 수도 있다”

북한이 대북 제재망을 바짝 조이고 있는 미국을 향해 ‘비핵화로의 길이 영원히 막힐 수 있다’고 경고했다.

북·미 협상이 교착된 와중에 미국 정부가 인권 문제까지 제기하며 압박 강도를 높이자 반발 수위를 끌어올린 것으로 해석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핵 담판을 벌인 뒤 북한이 이처럼 강경한 대미 메시지를 낸 건 처음이다.

북한은 16일 조선중앙통신에 보도된 외무성 미국연구소 정책연구실장 명의 담화를 통해 “국무성을 비롯한 미 행정부 내 고위 정객들이 제재 압박과 인권소동의 도수를 전례 없이 높이는 것으로 우리가 핵을 포기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타산하였다면 그보다 더 큰 오산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조선반도 비핵화로 향한 길이 영원히 막히는 것과 같은 그 누구도 원치 않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외무성 담화는 또 “미국은 최대의 압박이 우리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라도 깨닫고 싱가포르 공동성명 이행에 성실하게 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격앙된 분위기는 지난 13일 조선중앙통신이 그간의 침묵을 깨고 “미국이 제정신으로 돌아올 때를 인내성 있게 기다리고 있다”고 주장했을 때 감지됐다. 북한은 이번 외무성 담화에서 “싱가포르 정상회담 이후 6개월 간 미 국무장관을 비롯한 미국의 고위 정객들은 우리를 악의에 차서 헐뜯었다”며 “무려 8차에 달하는 반공화국 제재 조치를 취했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미국에서 비핵화 협상을 총괄하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까지 거론한 게 눈에 띈다. 또 “최근에는 있지도 않은 인권문제까지 거들면서 주권국가인 우리 공화국 정부의 책임 간부들을 단독제재 대상 명단에 추가하는 도발적 망동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고 했다. 미 재무부가 김 위원장의 오른팔인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을 제재 리스트에 올린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지난 10월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 이후 두 달 넘게 진전이 없는 상태다. 지난달 8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릴 예정이던 고위급 회담이 북한의 요청으로 한 차례 연기된 뒤로는 후속 일정도 못 잡고 있다.

외무성 담화가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 협상을 여전히 낙관하는 입장을 밝힌 뒤 나온 점도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현지시간) 트위터에 “북한은 경제적으로 성공할 잠재력이 있다”며 “김정은은 누구보다 이를 잘 알고 그의 주민을 위해 전적으로 그 기회를 활용할 것”이라고 썼다. 김 위원장을 협상장으로 이끌기 위한 계산된 발언으로 해석됐지만 북한은 협상 재개 전 제재 완화에 성의를 보이라고 맞받은 셈이다.

다만 북한이 외무성 미국연구소 실장 명의로 담화 수위를 조절한 점,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 관계 개선 의지에 대한 신뢰를 확인한 점을 볼 때 대화 판을 깨려는 의도는 아닌 것으로 해석된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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