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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사법농단 의혹 연루 전·현직 법관 93명, 차관급 이상만 34명



‘사법농단 의혹’ 사건에 연루된 전·현직 법관들이 모두 93명인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100명에 가까운 법관이 재판거래, 법관사찰 등 불법에 연루된 것은 사법부의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이들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에 적시돼 있다. 수사 상황에 따라 연루 법관 규모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크다.

국민일보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해 확보한 임 전 차장의 공소장에 따르면 대법관급 10명, 고법 부장급 24명, 지법 부장급 44명, 평판사급 15명 등 93명의 전·현직 법관이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것으로 파악됐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을 기소하며 크게 4가지로 범죄 혐의를 분류했다. ‘상고법원 추진 등 법원의 위상 강화 및 이익 도모 관련 범죄 혐의’ ‘대내외적 비판세력 탄압을 위한 범죄 혐의’ ‘조직 보호를 위한 범죄 혐의’ ‘공보관실 운영비 불법 편성 및 집행 관련 범죄 혐의’다. 90명이 넘는 법관들이 당시 현직으로 이 같은 비위 행위에 직접 연루됐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공보관 운영비 불법 편성에 간접 관여한 각급 법원 공보판사들까지 포함하면 연루 법관 규모는 100명을 넘어선다.

이들 법관 대부분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차한성·박병대·고영한 전 행정처장(대법관), 임 전 차장의 지시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사건에 연루됐다. 재판거래 기획 및 법관사찰 문건을 작성하거나 행정처 재판개입에 동조하는 식이었다. 특히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들의 지위확인 소송 과정에 행정처가 개입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구체적인 행태를 확인할 수 있다. 2015년 행정처는 통진당 의원들의 지위 상실 여부에 대한 판단은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법원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각급 법원에 ‘소를 각하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재판 지침을 사실상 하달했다. 판결 과정에서 헌재보다 법원이 우위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려던 것이다.

2015년 5월 당시 이규진 대법원 양형실장은 서울 강남역 일식집에서 조한창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를 만나 이 같은 지침 문건을 전달했다. 이 문건은 향후 추적을 피하기 위해 법원 문건이 아닌 것처럼 변형돼 있었다. 조 부장판사는 문건 내용을 관련 사건을 맡고 있던 서울행정법원 재판부 재판장에게 전달했다. 심경 당시 사법지원실 총괄심의관도 같은 기간 관련 사건을 담당했던 전주지법 재판부에 행정처 지침을 하달했다. 해당 재판부는 행정처 의중대로 재판을 진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고법 부장판사였던 이동원·노정희 대법관도 행정처의 전방위 재판개입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들은 통진당 소송 관련 행정처의 지침을 받았다. 선고 결과는 지침 내용과 동일했다. 행정처의 재판개입이 이뤄진 법관 가운데 김광태 당시 광주지법원장, 반정우 당시 서울행정법원 부장판사 등 단 두 명만 행정처 요구에 따르지 않았다. 김 원장은 통진당 관련 사건을 심리 중인 재판부에 행정처 지침을 전달해 달라는 행정처 요청에 대해 “얘기하기가 쉽지 않다”고 일축했다.

검찰은 인사권을 행정처와 대법원장이 쥐고 있기 때문에 법관들이 행정처 요청을 거부하지 못했다고 설명한다. 실제 많은 법관이 조사 과정에서 “승진에서 누락될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부담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다만 90명이 넘는 법관들이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것은 모럴 해저드가 아니라면 설명하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현직 고법 부장판사들은 10명 중 1명이 의혹에 연루돼 있다(지난 9월 기준 159명 중 19명, 11.9%). 당시 일부 법관은 ‘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자각을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다만 헌재 내부 정보 322건이 헌재 파견 법관들을 통해 행정처에 보고되는 등 범죄 행위에 적극 가담한 사례도 적지 않다.

박찬운 한양대 로스쿨 교수는 “‘사법관료화’가 법관이 가져야 할 정의감을 무디게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판사 출신 서기호 변호사는 “일부 양심 있는 판사는 사직을 각오하고 지시를 거부했다. 양심이 있다면 법복을 벗는 사람도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법농단 연루자 인명사전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향후 정치권에서 추진될 법관 탄핵의 범위가 더 넓어질 것”이라며 “국정조사를 해 관여 법관들을 불러내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문동성 이가현 기자 the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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