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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전쟁 때문에… APEC 정상회의 공동성명 채택 불발

마이크 펜스(오른쪽 두 번째) 미국 부통령이 17일 밤(현지시간) 파푸아뉴기니 포트모르즈비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만찬장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와 이야기하고 있다. 오른쪽에 문재인 대통령이 보인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펜스 부통령 앞쪽으로 지나가고 있다.AP뉴시스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갈등 탓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공동성명도 채택하지 못한 채 18일 폐막했다. 1993년 창설된 APEC 정상회의에서 공동성명을 채택하지 못한 것은 처음이다.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은 세계무역기구(WTO) 개혁을 둘러싸고 의견 차를 보였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회의 기간 정면충돌한 사건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AP통신이 입수한 미국의 공동성명 초안에는 불공정한 무역관행을 강하게 비판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APEC 개최국 정상인 피터 오닐 파푸아뉴기니 총리는 공동성명 채택 불발 관련 질문에 “두 거인(two big giants) 때문”이라며 미국과 중국을 거론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미국과 중국 등이 작성한 초안에 차이가 있었다”고 말했다. 정상들은 결국 의장성명을 채택하는 데 그쳤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대신해 참석한 펜스 부통령과 시 주석은 이번 회의에서 격한 감정싸움을 벌였다. 시 주석은 전날 APEC 최고경영자(CEO)포럼 연설에서 “인류는 다시 한번 갈림길에 섰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시 주석은 “어떤 방향을 선택해야 하느냐”며 “협력이냐 대결이냐, 개방이냐 폐쇄냐, 윈윈 발전이냐 제로섬 게임이냐”고 반문했다. 이어 “역사는 냉전이나 열전, 무역전쟁 등 어떠한 형태의 대결에서 승자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미국의 통상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근시안적 접근”이라고 말했다.

펜스 부통령은 곧바로 맞받았다. 그는 연설에서 “중국은 아주 오랫동안 미국을 이용해왔으나 그런 시절은 이제 끝났다”며 그동안 중국의 지식재산권 절도와 기술 이전 요구, 국영기업 보조금 지급 등을 열거하며 비난 수위를 높였다. 그러면서 중국에 훨씬 많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펜스 부통령은 또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를 겨냥해 “중국이 무리하게 다른 나라의 인프라 건설에 간섭하고 있다”며 “중국의 차관은 모호하고 조건이 붙어있어 주변국들을 빚더미에 빠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대일로를 ‘수축벨트’ ‘일방통행 도로’라고 비꼬기도 했다. 시 주석은 이런 공격을 예상한 듯 “일대일로는 정치적 의도를 갖고 설계된 게 아니고, 빚의 수렁에 빠뜨리지 않는다”고 옹호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중 무역협상 타결 가능성 언급에도 불구하고 이달 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이뤄질 양국 정상의 만남은 성과를 도출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16일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중국이 보내온 (무역협상) 조치 목록은 142개 항목으로 꽤 완벽했지만 4∼5개 큰 항목이 빠져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윌버 로스 미국 상무부 장관은 미·중 정상회담에서는 잘해야 추가 논의를 위한 틀(framework)에 합의하고 내년 1월까지 공식적인 협상 타결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도 미·중 정상이 일시적 긴장 완화를 이룰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입장 차이 때문에 무역전쟁의 행로는 긴장 고조 쪽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이택현 기자 sch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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