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1년 세계는 변화 중] 미투와 함께 크는 한국의 ‘영영 페미’







글 싣는 순서

① 미국 : 사회연대로 진화하는 미투
② 일본 : 불모지에 부는 변화의 바람
③ 스웨덴 : 성 역할 탈피 성중립교육
④ 영국 : 임금격차 해소 ‘페이 미투’
⑤ 한국 : 활발한 여성주의운동과 과제 <끝>


미투(#MeToo) 운동의 불길은 한반도로 건너와 더 거세게 타올랐다. 국내 여성단체 활동가와 학자들은 미투 운동과 시기적으로 맞아떨어진 최근의 페미니즘 열풍이 여성운동에 새로운 전기를 가져왔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여성운동이 위에서 아래로 향하던 기존의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 비로소 아래에서부터의 움직임 중심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국민일보가 18일까지 만난 국내 여성단체 활동가와 여성학자들은 최근의 흐름을 ‘완전히 새롭다’고 표현했다. 수년 새 미투 운동을 비롯해 서울 강남역 화장실 살인 사건, 문단 내 성폭력 고발, 서울 혜화역 시위를 거치면서 대중의 여성인권을 향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정책 위주 활동이던 이전과 달리 직장·학교 내 성희롱이나 불법촬영물 등 일상과 직접 맞닿은 의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도 새 시대 여성운동의 특징이다.

사실 지금까지의 국내 여성운동의 성과는 선진국과 비교해도 결코 작지 않았다. 1990년대만 해도 성폭력특별법, 가정폭력방지법, 남녀차별금지및구제에관한법까지 여성인권을 위한 다양한 법률이 만들어졌다. 이어 2001년 성매매특별법 제정과 2008년 호주제 폐지에 이르면서 국내에서 여성인권을 위한 법·제도적인 기반은 일정 수준 마련됐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역설적이게도 여성운동의 현장이 활력을 잃은 것 역시 이 시기다. 2000년대 후반 들어 각 대학에서는 여성학과가 줄지어 없어지거나 축소되고 총여학생회도 명맥이 끊기기 시작했다. 여성단체들은 일할 사람이 없어 허덕였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1997년 외환위기 뒤 학생운동 세력이 사라지면서 오랫동안 활동가를 새로 만드는 일 자체가 어려웠다”며 “당시는 여성운동이 완전히 바닥을 찍었다”고 설명했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건 보수 세력의 집권 뒤 새로운 의제를 만들기 어려웠던 것도 침체에 한몫했다.

새 바람이 분 건 2∼3년 전 인터넷 여성 커뮤니티, SNS를 중심으로 대중 사이에서 페미니즘 열풍이 불면서다. 미투 운동은 여기에 더 불을 지펴 대중을 직접 거리로 이끌어냈다. 여성운동 내에서는 이처럼 새롭게 등장한 페미니스트 세대를 ‘영영 페미’ 세대로 부르기도 한다. 90년대 여성학 전공자를 중심으로 새 바람을 일으켰던, 어느덧 40대가 된 ‘영(Young·젊은) 페미니스트’ 세대의 다음 주자란 뜻이다.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의 저자 백소영 강남대 교수는 “한국은 여성 인권에 관한 의식보다 법이 앞선, 역설적인 사례”라면서 “엘리트 중심으로 법이 먼저 마련되다 보니 이를 적용할 젠더 감수성이나 실천의지가 따라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관련법이 마련됐지만 성폭력이나 육아부담, 고용차별과 같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법과 현실의 괴리만 커지는 결과로 나타났다는 설명이다. 최근 성폭력 처벌 형량이 늘어났지만 검거와 처벌 비율이 형편없는 현실에선 별 쓸모가 없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대표는 “여성운동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은 영역이 있었기에 이를 경험한 여성들이 변화를 요구하는 건 필연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의 여성운동 진영도 87년 민주화운동 체제에서 기존 여성운동이 담지 못한 요구나 변혁을 위해 생겨난 그룹이지만 ‘국가 페미니즘’이라는 흐름에서 일정하게 체제에 편입된 면을 부정할 수 없다. 반성할 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여성운동가들은 최근 합류하는 이들 중 다양한 경로를 통해 여성주의를 접한 일반인들이 많아졌다고 말한다. 페미니즘 공부 모임을 일상에서 하는 소모임도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2016년에서 2017년 사이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혜화역 시위로 대표되는 최근의 여성시위 역시 정책적 의제를 내는 데 집중하기보다 대중적 메시지에 더 무게를 둔다. 대중에게 각인될 수 있는, 훨씬 강하고 직접적인 구호와 퍼포먼스를 내놓는 게 이들의 특징이다.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새로 등장한 세대는 기존 체제로부터 공격받는 걸 개의치 않는, 자신의 주장을 거리낌 없이 얘기하는 첫 여성들”이라고 봤다. 김 대표는 “지금까지의 여성운동이 사회가 우리의 의제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하기 위해 온갖 머리를 짜내서 노력했다면 지금 세대는 하고 싶은 말을 내놓는 데 두려움이 없다”며 “매우 놀라운 변화”라고 덧붙였다.

논란도 있다. 최근 언론의 주목을 받는 온라인 커뮤니티 ‘워마드’나 혜화역 시위를 주도한 ‘불편한 용기’ 등을 향한 평가는 여성운동 세력 안에서도 격론이 오가는 소재다. 이들 중 일부는 아동, 장애인 등 소수자를 배척하거나 기존 여성운동 진영과의 교류를 거부한다. 그럼에도 이들이 지난 8월 서울 광화문에서 개최한 시위는 참가자가 주최 측 추산으로 7만명에 이르는 등 강한 대중 호소력을 증명했다.

한 여성단체 관계자는 “혜화역 시위 주최 측과 다른 여성단체들은 그 어떤 연결고리도 없는 상태”라면서 “최소한의 소통창구가 있었다면 시위에서 나왔던 의제나 힘 자체가 여성운동계를 통해 더 직접적으로 정치·사회 등 사회적 변화를 만드는 창구에 전달될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그 많은 여성들이 한자리에 모여 외쳤다는 거대한 사건이 정책이나 의제로 흡수되지 못하고 사라져버리진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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