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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포커스-강준영] 시간은 북한 편이 아니다



북한 비핵화 협상이 또다시 전환점을 맞고 있다.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급진전이 기대됐지만, 오히려 더욱 꼬이는 모양새다.

미국이 내년 1월 이후 2차 정상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양측 간 고위급 회담은 연기 이후에도 여전히 날짜를 못 잡고 있다. 북한은 오히려 외무성과 선전매체 등을 통해 ‘핵·경제 병진 노선’ 복귀를 강조하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첨단전술무기 시험을 현지 지도했다고 발표해 최근 북핵 협상 교착 국면에서 협상력을 배가하려는 북한식 승부수를 던졌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은 북핵 문제에 진전이 없으면 전례 없는 외교적·경제적 대북 압박이 지속될 것임을 천명하면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분명히 핵 리스트와 폐기·검증 플랜을 밝혀야 한다고 북한을 압박하고 나섰다.

미국과 북한이 모두 협상 동력 유지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과거의 첨예한 대결 모드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많지만 결코 시간은 북한 편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핵 협상 장기화가 북한에 불리할 게 없다고 인식할 수도 있지만 사정은 북한에 유리하지 않다. 이제 와서 핵·미사일 실험을 재개할 수도 없고, 이미 참관(參觀)이 될 수밖에 없는 ‘폐기된’ 풍계리 핵 실험장을 사찰하고 검증하는 제안 정도로는 미국을 설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북한은 미국이 전혀 대응 조치를 하지 않는다고 불만이지만 거의 30년에 걸친 대북 핵 협상 오류에 대한 미국의 경험은 이를 용납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비핵화 본질로 돌아가 과감한 조치를 우선해야 하는 몇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다. 우선, 중간 선거를 치른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 해결을 서두르지 않을 것임을 수차례 강조하면서 이미 재선을 염두에 둔 장기전 모드로 들어갔다. 북핵 문제 해결이 그리 간단치 않음을 인식한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사는 줄어들 가능성이 크고, 뉴욕 고위급 회담 무산으로 백악관 내부에서의 평양 압박 강화 기조도 감지되고 있다.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 역시 대북 정책에 대한 입김이 세지고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에도 반영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의지가 많이 반영됐던 북·미 협상 속도는 전보다 느려질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북한이 원하는 빠른 제재 완화는 갈수록 실현이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미국에 ‘북한 배후론’으로까지 지목되면서 국제적 차원의 대북 제재 완화를 주장하는 중국도 적극성을 띠기 어렵다. 북핵 문제에 관해 북핵 보유 불인정 및 남한을 포함하는 한반도 비핵화를 북핵 원칙으로 강조해 왔지만 중국도 딜레마에 봉착해 있다. 북·미 대화나 남북 간 소통이 원활해지면 중국의 대북 영향력은 자연스럽게 감소되기 때문이다. 혹시 북한이 기존 핵을 보유하면서도 대미 위협을 해소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 정도로 미국과 타협할 생각이라면 이 정도로 중국의 전폭적 지원을 받기 어렵다. 북한 비핵화는 주한 미군 문제나 사드(THAAD) 철수 등을 거론할 수 있는 중요 대미 전략 카드이며, 장기적으로는 ‘핵보유국 북한’의 달라진 영향력을 감내할 필요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의 의지를 곡해하면 안 된다. 미국은 남북 경협 추진이 북한 비핵화 추진 정도를 넘어서지 말고 대북 압박 기조를 유지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경협이 ‘비핵화 추진’에 도움이 된다는 ‘비핵화 동력론’을 견지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도 4·27 판문점 합의 내용을 제대로 실천하라며 한국 정부를 압박하던 북한은 ‘미국에 맹종하고 코 꿰인 송아지처럼 끌려다닌다’는 막말 세례까지 퍼붓고 있다. 당연히 한반도 평화 분위기 조성의 진정한 주체인 대한민국 국민들의 민심을 얻을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유일한 길은 기싸움이나 신경전을 넘어서는 과감한 비핵화 조치다. 시간은 결코 북한 편이 아니다. 김 위원장의 전략적 결단을 기대한다.

강준영 한국외대 중국정치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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