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기타

[뉴스룸에서-민태원] 생애말기 돌봄, 부산처럼



지난해 8월 기준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은 725만명이다. 노인이 전체의 14%를 차지해 대한민국은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진입했다. 2020년에 1차 베이비부머(1955∼63년 출생)가 65세에 도달하고 2026년쯤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기대수명이 늘면서 건강수명과의 격차도 점차 벌어지고 있다. 2016년 출생아의 기대수명은 평균 82.4세, 건강수명은 73세로 9.4세 차이가 난다. 10년 전(8세)보다 간격이 더 커졌다. 건강수명은 사는 동안 질병·부상으로 몸이 아프지 않은 기간을 뜻한다. 다시 말해 노후에 10년 가까이는 건강을 잃은 채 돌봄이 필요한 상태에 놓인다는 얘기다. 돌봄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지금 한국 상황에선 병원과 복지시설 중심의 비효율적인 돌봄에 내몰릴 게 뻔하다. 한국인은 병원과 요양원 등에 머물다 죽음을 맞는 비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 지난해 사망자의 76.2%가 의료기관에서 생을 마쳤다. 가정에서 삶을 마무리한 비율은 14.4%에 불과하다.

대다수 한국인은 좋은 죽음의 장소로 자택을 꼽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자신이 오래 살던 집에서 가족 품에 안겨 잠들듯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건 그야말로 소망일 뿐이다. 병원 임종이 갈수록 늘고 있지만 국내 의료기관 대부분은 임종 환자들이 가족과 함께 마지막 순간을 평온하게 영위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 위한 노력에 매우 소홀하다. 임종실 설치가 의무화돼 있는 호스피스완화의료기관(전국 84곳, 1341병상)을 빼고는 임종 공간을 별도로 운영하는 병원이 없다. 돈이 없어 1인실을 임종실로 쓸 수 없는 취약계층은 응급실의 격리공간이나 간호사 처치실 같은 곳에서 싸구려 죽음을 맞고 있다.

2030년 이후에는 ‘사망 난민’이 발생할 것이란 우울한 전망도 나온다. 급속한 고령화로 1년간 사망자 수는 지난해 28만5000여명에서 2035년에 48만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다. 현재의 시스템이 유지된다면 건강하지 않은 노후 10여년을 병원이나 시설에서 보내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누울 병상조차 없어 죽을 자리를 찾아 이곳저곳 떠도는 난민 신세가 될 수도 있다.

정부가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라는 획기적인 사회서비스 시스템 도입을 들고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처럼 병원과 복지시설 중심, 국가 주도의 돌봄 서비스를 커뮤니티, 즉 지역사회 중심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돌봄을 필요로 하는 주민들이 병원·시설이 아닌 자택이나 그룹홈 등 지역사회에 거주하며 개개인의 욕구에 맞는 보건의료, 복지, 장기요양, 주거, 생활지원 서비스를 제공받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아직은 커뮤니티 케어의 개념이 모호한 감이 없지 않다. 다만 부산시가 2009년부터 전국에서 유일하게 시행해 온 공공형 생애말기 돌봄사업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부산시는 암 등 말기 질환으로 집에서 머무는 환자들을 16개 구·군 보건소에 등록시켜 호스피스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가까운 보건소에 요청하면 간호사와 사회복지사, 자원봉사자, 의사, 종교인 등이 집으로 찾아가 통증 완화와 간호, 정신적·영적 지지를 제공한다. 자택 임종도 적극 돕고 있다. 의료기관 접근이 어려운 취약계층도 비용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어 ‘보편적 돌봄’이 실현된다. 국가 차원의 커뮤니티 케어 정책이 이제 막 걸음마를 떼려는 시점에 10년을 앞선 부산의 선견지명을 높이 사고 싶다.

다만 한 가지, 영국 일본 등 선진국들도 지역사회 중심의 생애말기 돌봄을 확대하되, 아직은 병원 사망이 많은 현실을 받아들여 의료기관에서의 질 높은 임종 환경을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런 점이 보완되고 향후 서비스 대상과 범위가 확대된다면 부산의 선도적 생애말기 돌봄은 한국형 웰다잉 커뮤니티 케어 모델로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민태원 사회부 부장대우 twmin@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