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신용목] 우리가 만난다는 것



공간에 대해서라면 아무리 넓혀 봐도 지구쯤일 것이고, 시간에 대해서도 시차의 경험에 비추어 기껏 12시간 차이만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유일한 공간 속에 단 한 갈래의 시간만 상정하고 살 뿐이다.

물리학까지 가지 않더라도, SF 영화에서 종종 시공간이 단일하지 않고 심지어 휘어지기도 하며 어느 지점에서는 건너뛰거나 앞뒤가 하나로 묶여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다. 내 감각으로는 인지되지 않는, 이 복잡하고 어려운 이야기에 매료되어 나는 가끔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러면 그 말들이 전혀 낯설지 않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기도 하다. 우주에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공간이 있고 그것들이 따로 운용하는 시간이 있다는 말은, 마치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고 각자의 인생이 있다는 말 같기 때문이다. 그들은 각자 다른 시간을 살고 심지어 다른 깊이의 사랑에 빠지기도 하며 어느 순간에는 절망이 모든 것을 찢어버리거나 예기치 못한 불운 속에 죽음이라는 인생 이전의 장소로 돌아가기도 한다. 그들의 고통과 슬픔과 쓸쓸함이 다른 것처럼 그들이 같은 시공간을 살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우주라는 비유가 그 상투적인 막연함을 통해 제공하는 위안에 비하면 좀 덜하지만, 역으로 우주라고 해서 제 희로애락을 피해 갈 수 없다는 말 또한 어떤 인생에게는 위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곧 연말이라 송년회가 아니더라도 해를 넘기지 않기 위해 요 며칠 분주하게 약속을 잡고 있다. 각자가 다른 시공간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어느 한순간 한 지점을 정해 만나기로 하는 것이다. 동그라미를 쳐 날짜를 꼭 묶어놓다가 이렇게 묻는다.

각자의 시공간이 하나의 시공간 속으로 수렴되는 ‘약속’은 무엇일까. 모르긴 몰라도 그로 인해 어떤 시간은 더 구부러질 것이고 어떤 공간은 더 늘어날 것이다. 물론 각자의 인생 속에서 말이다. 시공간이 슬쩍 겹쳐지는 그 때, 우리 삶 속에는 빅뱅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용목(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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