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꺼진 ‘다다익선’ 원형대로 불밝힐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설치된 백남준의 작품 ‘다다익선’이 상영 중단된 가운데 독일의 기술을 활용하면 재가동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관람객이 불 꺼진 작품 앞에서 현재 전시 중인 자료전 ‘다다익선 이야기’를 보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지난 16일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중정 로비.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의 기념비적 작품 ‘다다익선’이 이곳에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하며 과천관에 맞게 주문해 설치한 이 작품은 아파트 6층에 맞먹는 높이 18.5m의 엄청난 규모다. 그런데 개천절을 상징하는 1003개의 브라운관은 모두 불이 꺼져 있다. 지난 2월 말 누전이 발생한 이후 화재 위험 탓에 9개월째 상영 중단 상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9월부터 ‘다다익선 이야기’ 자료전을 이곳에서 개최하고 있다. 죽은 듯 서 있는 거대한 작품 앞, 다다익선의 일대기가 애도 영상처럼 흐르고 있었다.

30년 만에 완전히 불이 꺼진 다다익선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독일 신기술을 활용하면 지금의 브라운관 모니터 방식 그대로 작품을 소생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김영순 전 부산시립미술관장은 18일 국민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독일 체트카엠(ZKM)의 미디어 기술을 활용하면 디지털 TV로 바꾸지 않아도 아날로그 방식을 그대로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ZKM은 바덴-뷔르템베르크주 칼스루헤에 소재한 첨단 미디어센터다. 김 전 관장은 “ZKM은 예술은 제작된 그 시대 기술을 그대로 사용해야 의미가 있다고 본다. 오리지널 상태를 유지하며 작품을 보존하는 기술을 연구했고, 변압기를 사용함으로써 수명이 다한 아날로그 미디어 아트 작품을 재생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소개했다. 그는 부산시립미술관장으로 재직 중이던 지난해 8월 미디어 분야 교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러 ZKM을 방문한 바 있다. 그때 부산시립미술관이 소장한 백남준 미디어 아트 작품의 수명 문제에 대한 자문을 구하자 이런 답변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다다익선은 브라운관 1003대로 채운 원형의 6층 영상탑 형태 미디어 설치 작품이다. 백남준 생존 당시인 2003년 수명이 다한 브라운관 모니터를 삼성의 후원을 받아 전면 교체했었다. 이후에도 수리와 부분 교체를 반복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검토 중인 대안은 브라운관 모니터 생산이 안 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 디지털 방식의 LCD 모니터로 교체해 외형을 유지하거나, 전면 철거하고 설치 매뉴얼 등을 자료화하는 방안 두 가지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여름 다다익선의 철거를 검토했다가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운영자문위원 회의에서 강력한 반발에 부딪쳤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오광수 뮤지엄 산 관장은 “1000개가 넘는 모니터를 갖춘 대형 작품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유물로서도 가치가 충분히 있으니 디지털 기술로 바꾸더라도 살려나가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 ZKM 기술이 적용되면 백남준이 생전에 사용했던 브라운관 TV를 그대로 살리는 제3의 대안이 된다. 원형을 보존할 수 있는 최고의 대안인 셈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강승완 학예실장은 “내년 상반기 중 국내외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해 하반기 중에 결론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 컬렉터가 기성품을 구매한 게 아니라 기관이 작가에게 주문하는 방식으로 제작된 백남준 미디어 아트 설치물은 현재 한국에는 서울시립미술관의 ‘서울 랩소디’, 경남 창원 성산아트홀의 ‘창원의 봄’ 등 5∼6군데 있다. 일각에서는 백남준 작품 자체가 우상화돼 있는 것은 문제라며 사정에 따라 철거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글·사진=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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