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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강준구] 신독의 시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는 국민들의 대언론 불신을 폭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단순히 ‘전원 구조’ 오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 이후 벌어졌고 알려졌던 많은 일화들, 예를 들어 교통사고와 다를 바 없다는 한 언론사 간부의 발언이라든지 청와대 홍보수석의 보도 협조 반협박 등이 기폭제가 됐다.

박근혜정부 아래 일선 기자들이 알듯 말듯 느꼈던 기사 판단에 대한 어떤 압박들이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실체를 드러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여러 언론사 기자들과 오랜 기간 나눴던 얘기들이니 공감대가 없진 않을 것이다.

힘 있는 출입처를 담당하는 기자들은 신경이 곤두서게 마련이다. 청와대나 대법원, 검찰, 금융 당국 같은 정부 기관이나 글로벌 대기업 등이 해당된다.

국민적 주목을 받으니 기사는 잘 써야 하는데, 보안 강도가 높으니 언제나 정보에 목마르다. 깊이 있는 팩트를 취재하려면 깊숙이 들어가야 하고, 그렇게 들어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동화되게 마련이다. 그러다 출입처의 논리를 동어 반복하는 기사를 쓰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출입처에서 고급 정보를 이용해 기자들을 관리하는 방편이기도 할 것이다.

이런 방식에 익숙해지다 보면 다른 업(業)을 꿈꾸는 경우도 생긴다. 기자들이 가장 많이 진출하는 분야가 정치권과 기업이다. 기자 경력을 활용해 기업의 홍보나 대관(對官)을 맡거나 정치 취재 경험을 밑천 삼아 현실 정치에 뛰어드는 경우다. 비전문가인 기자들이 쉽게 전직할 수 있는 이유는 오랜 기간 출입하며 그들의 논리와 생리를 깨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기자 출신 대통령은 없으니 기자 출신으로 이른바 관직의 최고에 오른 사람은 이낙연 국무총리다. 차기 대선 후보로도 거론되니 따지자면 성공적인 전직이다. 그동안 많은 기자들이 정치권으로 진출했다. 특별한 사회적 소신을 보인 경우보다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 권부를 좇는 경우가 더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엊그제 언론사 편집회의에 참석했던 정치부장이 오늘 입당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폴리널리스트’(언론인+정치인)가 범람하는 시대를 맞아 오늘도, 내일도 기자들은 입당원서를 쓸 것이다.

기자들이 뽑은 존경하는 언론인은 대체로 권력과 맞섰던 해직기자들이다. 1999년 기자협회보 조사, 2003년 미디어오늘 조사에서 1위로 오른 기자는 고(故) 송건호 선생이다. 그는 1968년 신동아 주간과 부장을 검찰이 구속한 신동아 사건을 지적하며 “권·언 복합체를 형상하는 계기”라고 비판했다(현대 언론인 열전). 권·언 복합체는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31년이 지났지만 국민에게 신뢰받는 기자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것 같다. 이것이 일 잘하는 기자들이 모두 전직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군부의 외압에 저항했던 언론인의 지사적 열정이 필요 없어진 지금, 시대가 요구하는 보도가 무엇인지 탐구하지 않는 낡은 구조가 문제일 수도 있겠다. 신문과 방송이 모두 먹고살기 어렵다 보니 호구지책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지적은 뼈아프다.

올 1월 퇴임했던 박보영 전 대법관은 최근 원로 법관 자격으로 광주지법 순천지원 여수시법원의 소액사건 전담 판사로 임명됐다. 아마 여수 인근 시민들은 자신의 최대 3000만원짜리 소액 송사의 결론을 크게 불신하진 않을 것이다. 이를 보며 기자의 끝은 어때야 하는지 곱씹곤 한다.

경찰서에서 시작한 기자들이 힘 있는 출입처를 거쳐 직을 떠나거나 소리 없이 사라진다. 별다른 보도 철학 없이 정치적 입장이나 벌이에만 매몰돼 곡필을 주저하지 않는 언론사도 늘어나고 있다. 시대적 통찰보다 권력 끝자락이 쥐어졌던 시절 무용담이 자신을 규정하는 기자들도 적지 않다. 원로 기자들의 역할이 절실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신독(愼獨)의 시대다.

강준구 정치부 차장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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