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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브렉시트 초안 나왔지만… 벌집 쑤신 英



영국과 유럽연합(EU)이 내년 3월 29일로 예정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4개월여 앞두고 협정문 초안에 합의했다. 2016년 6월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브렉시트를 결정한 지 29개월, 영국과 EU가 탈퇴 협상을 시작한 지 17개월 만이다. 하지만 이번 합의가 효력을 얻으려면 영국 의회와 EU 27개 회원국의 승인을 필요로 한다. 영국에서 내각 통과조차 장담하기 어려운 만큼 브렉시트를 둘러싼 진통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계속될 전망이다.

가디언, BBC 등 영국 언론은 13일(현지시간) 영국과 EU가 벨기에 브뤼셀에서 최종 협상을 벌인 결과 실무 수준에서 합의를 이뤘다고 보도했다.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의 국경 문제는 브렉시트 이후 ‘하드 보더’(Hard Border·국경 통과 때 통행과 통관절차를 엄격히 하는 것)를 피하기 위해 별도 타협안에 도달할 때까지 영국 전체를 EU 관세동맹에 잔류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이와 함께 영국이 EU에 지급할 배상금은 390억 파운드(약 57조원)로 확정됐다.

500쪽 가까운 합의문 초안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일부 내용이 조금씩 유출되고 있다. 가디언은 영국의 관세동맹 잔류를 언제 끝낼지는 영국과 EU가 함께 참여하는 독립 중재위원회에서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독립중재위에는 영국과 EU가 동수로 참여하며, 제3자 측 인사가 추가될 것으로 전해졌다.

테리사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협정문 초안을 논의하기 위해 14일 특별 내각회의를 소집했다. 장관들은 회의에 앞서 각자 초안을 검토할 시간을 갖게 된다. 메이 총리는 13일 밤늦게까지 각료들과 일대일 면담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내각이 초안에 동의하면 EU와 영국은 문구 등 초안 수정작업을 계속한 뒤 19일 EU 장관회의를 연다.

하지만 초안 합의 소식 이후 영국 정가는 여야 가리지 않고 벌집을 쑤신 듯 소란스럽다. 브렉시트 이후에도 교역 등에서 EU와 최대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메이 총리의 소프트 브렉시트 전략(체커스 플랜)에 따른 협정문 초안이 브렉시트 지지파와 반대파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로서는 메이 총리가 내각의 승인을 얻어낼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다. 브렉시트 이후에도 영국이 여전히 EU의 무역 규칙을 적용받는 것을 항복으로 생각하는 강경파를 설득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앞서 ‘하드 브렉시트’를 주장하다 사퇴한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은 “알려진 합의안대로라면 영국 의회가 영국 법률에 발언권을 가지지 못한다”면서 “각료들이 이번 초안을 부결시켜야 한다”고 요구했다. 최악의 경우 내각의 줄사퇴나 협상안에 대한 전면 거부가 일어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번 초안이 내각의 승인을 받는다고 해도 의회라는 더 높은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다. 메이 총리가 이끄는 집권 보수당은 현재 총 650석인 하원에서 315석으로 다수당을 차지하지만 과반에는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보수당 내에서도 EU 잔류파들은 이미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한 상황이다. 따라서 메이 총리가 의회에서 초안을 통과시키려면 연정을 구성하는 다른 정당과 야당을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의회의 기류는 내각보다 더 좋지 않다.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는 트윗을 통해 “이번 협상은 엉망”이라면서 반대표를 던지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일부 보수당 의원들과 연립정당인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DUP)은 벌써부터 각료들에게 이번 합의안에 항의해 사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결국 이런 1차 합의에도 불구하고 ‘노딜 브렉시트’ 우려는 여전하다. 영국이 아무런 합의 없이 내년 3월 EU를 떠나게 되면 영국은 사회 전반에서 극심한 혼란을 겪게 될 전망이다. 반면 일각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합의라고 해도 극심한 혼란보다는 낫다는 점에서 결국은 비준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EU는 1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영국을 제외한 27개 회원국 대사 회의를 소집했다. 영국과의 브렉시트 협상을 주도한 미셸 바르니에 수석대표가 협상 결과에 대해 회원국의 의견을 모으고 추인을 밟는 과정을 본격화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EU 내에서도 최종 합의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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