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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낯선 이의 자살 막아낸 네티즌… 아직 살 만한 세상

14일 0시30분쯤 자동차 동호인의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짧은 글이 올라왔다. ‘너무 힘들어서’란 제목이 붙어 있었고 본문은 ‘죄송합니다’ 한마디가 전부였다. 사진을 한 장 첨부했는데 극단적 선택을 할 때 종종 사용되는 도구와 함께 유서로 보이는 종이가 찍혀 있었다. 심야에 글을 본 많은 이들이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112에 자살이 우려된다는 신고가 쇄도했다. 댓글도 수백건 이어졌다. “이러지 말고 얘기를 해보자”는 설득부터 “국밥이나 한 그릇 하자”는 제안까지 그의 행동을 멈추기 위한 문장이 계속됐다. 그를 찾으러 거리로 나선 이들도 있었다. 오전 1시쯤 그를 안다는 이가 대구의 한 원룸촌 주변에 있는 것 같다는 정보를 올렸다. 대구에 사는 여러 네티즌이 “지금 출발한다”는 댓글을 남기고 현장에 갔다. 약 40분 뒤 경찰이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통해 그를 찾아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승용차에서 자살 시도를 한 뒤였으나 서두른 덕에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그를 병원에 옮긴 경찰관은 커뮤니티에 이런 메시지를 전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답니다. 이제 신고는 그만해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그때까지도 자살하려는 이를 구해 달라는 신고전화가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깊은 밤에 많은 이들이 잠을 포기한 채 한 청년의 안부를 걱정했다. 대부분 일면식도 없는 관계였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이들은 반드시 사전에 신호를 보낸다. 그것은 어리석은 행동을 말려 달라는, 나를 붙잡아 달라는 호소와 다르지 않다. 마지막 신호를 익명의 공간에 남겼다는 건 그만큼 단절된 상태였다는 뜻일 테다. 이를 외면하지 않고 붙잡아주는 손길이 우리 사회에 남아 있었다. 어떤 이는 “관심을 끌려는 글 아니냐”고 했지만 훨씬 많은 이들이 “제발 그런 글이었으면 좋겠다”며 애를 태웠다. 자살은 질병이다. 재발하고 전염된다. 보건복지부는 자살의 재발과 전염을 막기 위해 상담과 지원을 제공하는 ‘자살 시도자 사후관리사업’을 하고 있다. 몇 해 전 사후관리에 응한 80대 노인은 “살면서 이렇게 누군가의 관심을 받아본 건 처음”이라고 했다. 커뮤니티 회원들이 청년에게 보내준 관심은 자살을 막은 치료제였고 재발과 전염을 예방하는 백신이었다. 주변의 작은 관심이 아직 살 만한 세상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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