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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명호] 서구는 변하는가



미국과 프랑스, 독일 정상들이 서로 상대방을 미세하지만, 의도적으로 자극하는 미묘한 설전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저런 현안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긴 해도 정상들이 상대방을 콕 찔러 비난하는 비외교적 언사를 날리는 건 흔치 않다. 미국과 유럽국의 가치관이 서로 다른 쪽을 향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올 법하다. 세계사적 흐름, 특히 서구 내에서의 흐름이 심상치 않게 흐르고 있는 전조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지난 11일 파리에서 열린 세계 1차대전 종전 100주년 기념식에서 프랑수아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우리의 이익이 제일 먼저라고 말하는 것은 한 국가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것, 위대하게 만들 수 있는 것, 그래서 가장 소중한 것인 도덕적 가치를 깡그리 지워버리는 짓”이라고 말했다. 누가 들어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에 한 방 먹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표현이다. 이어 열린 파리평화포럼에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국가주의적인 편협한 시각이 부활하고 있다”고 말했다. 역시 미국의 일방 질주를 겨냥한 것이라고 외신들은 분석한다.

그냥 지나갈 트럼프가 아니다. 기념식 후 귀국한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프랑스만큼 국수주의적 나라는 없다”고 맞받아쳤다. 자신의 슬로건에 빗대 ‘프랑스를 다시 위대하게(MAKE FRANCE GREAT AGAIN!)’ 표현으로 비아냥대기도 했다. 마크롱이 “국수주의는 애국주의에 대한 배반”이라고 비꼰 것을 반박한 거다.

이미 영국은 브렉시트를 결정, 유럽 대륙과는 거리를 두는 19세기의 이른바 ‘영광스러운 고립(splendid isolation)’ 정책으로 돌아선 듯하다. 워싱턴 주류 정치를 뒤엎고, 전통적 동맹관계를 경제적 국익 차원에서 재설정하는 트럼프의 일방주의로 냉전 이래 서구의 기존 질서는 분명 흔들리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레쉬 유엔 사무총장이 현 정세를 “1차대전 전후 20세기 초 혼란기와 비슷하다”고 했다는데, 서구는 정말 거대한 변화의 입구에 들어섰는가.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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