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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사고 겪은 자들의 절망과 희망



초등학교 1학년이던 딸은 향초를 갖고 놀다가 촛불이 원피스에 옮겨붙으면서 심한 화상을 입었다. 당시 엄마의 마음은 어땠을까. 엄마는 그때를 회상하다가 이렇게 말한다.

“매년 사고 난 날짜가 되면 제가 좀 심하게 아파요.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처음에는 인식을 못 했어요. 사고 나고 2년 정도 지나고 3년째인가, 아, 아프네, 하면서 달력을 보니까 그 날짜인 거죠. 제가 그때 신체적으로 다친 건 아닌데도 그게 몸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이어지는 내용은 “조용히 지옥을 견딘” 딸의 투병기. 읽고 있으면 누구나 기분이 까라지면서 책장을 덮고 싶겠지만 엄마의 목소리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보자. 딸을 데리고 서울 영등포역 타임스퀘어에 갔던 날 엄마는 딸에게 말한다. “기분이 어때? 저 사람이 저렇게 쳐다볼 때 기분 나쁘지? 엄마도 기분 나빠. 그럼 그렇다고 얘기해도 돼. 쳐다보지 말라고.”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에는 이렇듯 가슴 아픈 스토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심한 화상으로 고통받았거나,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한 책이다. 화상사고가 여타 사고와 다른 점이 있다면 사고 이후에 외모가 심하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환자들은 “내가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니게” 되는 상황을 마주해야 한다. 그런데 ‘나’를 ‘나’로 만드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독자들은 어느 순간 이런 질문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사회복지법인인 한림화상재단이 기획했고 작가 5명이 인터뷰어로 나섰다. 필진을 대표해 ‘작가의 말’을 쓴 사람은 홍은전씨. 그는 “아픈 몸을 고치는 건 의사지만 잘못된 사회를 고치는 건 그 사회에 의해 아파본 사람들의 목소리와 그 목소리를 듣고 행동하는 사람들”이라고 적었다. “이 책이 고립되어 있는 화상 경험자들을 연결해 단단한 울타리를 만들고, ‘화상장애’에 대한 사회적 지원 체계를 만드는 데에 작은 보탬이 되기를 바랍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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