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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김재중] 불확실성의 공포



“차라리 잘못된 정책이라도 미리 결정되면 대비할 수 있지만 정부가 정책 방향을 명확하게 정하지 못하는 상황은 기업에게 최악입니다.”

사석에서 만난 한 기업인은 불확실성의 공포를 이렇게 말했다. 기업은 정부 정책이나 대내외 변수들을 고려해 최악의 경우부터 최선의 경우까지 여러 가지 경영 시나리오를 짠다. 그래서 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부 정책이 빨리 결정될수록 기업은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버는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요 정책에서 엇박자를 냈던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을 동시 경질함으로써 정책의 불확실성은 어느 정도 해소됐다. 하지만 김수현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이 대선 캠프 출신의 대통령 핵심 측근인데 반해 홍남기 경제부총리 후보자는 무색무취한 관료 출신이라는 점에서 ‘원 톱’의 존재감이 드러날지 의문이다.

국내 상당수 기업들이 연말이 다가오는데도 내년도 경영계획의 밑그림조차 그리지 못하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환율변동성과 고유가 등 대외 변수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업계는 내년에 미국의 본격적인 긴축과 신흥국의 위기 심화, 중국의 성장 둔화 등 불확실성이 최고조에 달해 위기의 한해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도 내년 주요 선진국 가운데 한국이 가장 큰 경제적 위협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에서는 각종 규제와 친노동정책 등이 기업을 옥죄고 있어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및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도 연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있다.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주요 기업 이사회 자리 절반 이상이 외국계 투기펀드 등에 넘어가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혁신성장을 위해 규제를 과감히 푼다고 했지만 기업들은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정부가 외교·안보에만 치우쳐 경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나 방향성을 제시하지 못해 기업들은 더욱 열악한 환경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해 있다. 재계는 한국경제가 중장기적인 저성장 늪으로 빠져드는 길목에서 규제완화가 혁신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돌파구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12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초청 간담회에서 “역대 정부마다 큰 노력을 기울였지만, 현장에서는 규제개혁의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며 “생명과 안전 같은 필수 규제를 제외한 다른 규제들에 대해서는 원칙적인 폐지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단기적인 처방보다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기업의 자유로운 도전을 가로막는 규제를 대대적으로 개혁해 구조적인 변화를 하루빨리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래야 혁신성장이 가시화되고 우리 경제의 역동성도 커질 것이다. 홍남기 후보자도 “우리 경제의 활력을 되찾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우리 경제가 활력을 되찾으려면 기업들이 규제에 얽매이지 않고 두려움 없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불확실성 해소를 위해 홍 후보자가 경제주체 및 시장과 적극 소통하길 바란다. 홍 후보자도 “매주 수요일 오찬을 비워두고 소상공인부터 대기업까지 가리지 않고 만나 이야기를 듣겠다”고 했으니 지켜볼 일이다.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또 하나의 요소는 강성 노조다. 한국GM 노조가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지역사무실을 무단 점거하고, 현대차 노조가 ‘한국형 노사 상생의 일자리 모델’인 광주형 일자리에 반대하며 총파업을 예고하는 등의 막무가내식 행태는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정부와 여당이 분명한 원칙을 갖고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가 예측가능한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기업들은 지혜롭게 새해 경영계획을 잘 설계해 노사가 협력한다면 위기는 기회로 반전될 수 있다.

김재중 산업부장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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